[칼럼] 영화 ‘밀정’에서 무도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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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에서 무도를 생각하다.

 

어쩌면 여전히 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 친일부역자들에 대한 논란은 정치권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와중에 마치 시리즈 물처럼 개봉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영화들은 각기 다른 시각으로 항일의 역사를 재조명 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중 최근 개봉한 영화 ‘밀정’이야말로 친일매국행위자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는 듯해서 무척 인상 깊게 다가온다.
그간 우리사회는 친일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화해의 연민과 용서를 베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는 가당키나 한일인가.

누군가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해 대대손손 고통을 받아야 하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로 부귀와 명예까지 누리고 산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제라도 반드시 새롭게 시도되어야 하며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전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개인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그 중 소위 ‘일본무도’를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20년이 가까이 수련해온 유사 합기도(Hapkido)를 버리고 정확한 합기도(Aikido)를 받아들이기까지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일본 무술’이라는 키워드였다.
굳이 항일무장투쟁사를 탐독했던 학창시절이 아니더라도 일본무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도도 유도도 아무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통무술’인줄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까지 더해져 유독 합기도가 일본 무술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무술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확한 것이 어떤 것이냐, 무엇이 진실이냐가 나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리고 일본무술 합기도를 받아들여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잣대는 바로 무술지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였다.

정확하지도 않은 짬뽕무술을 보급하면서 돈만 벌 것이냐, 제대로 된 것을 있는 그대로 보급하고 그들의 선택을 기다릴 것이냐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선택을 독립운동가들의 그것과 비유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나 그만큼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먹고 사는 문제를 들먹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고 그것이 마치 옳은 일인 양 왜곡하기까지 한다.

이것 역시 자신의 친일매국행위를 역사까지 바꿔가면서 미화시키려 하는 정치인들과 무엇이 다른가.

영화 ‘밀정’ 에서 속세의 고민 정도는 쉽게 넘어서는 것 같은 김우진의 깊은 고뇌에는 인간이기에, 인간임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한 분명한 신념과 의지가 있었기에 자신의 혀를 깨물으면서도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지 안았을까 싶다.

적어도 그 정도의 기백과 신념 정도는 있어야 현란하고 상업적인 체육서비스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도가라고, 무도는 이런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세월이 많이 흘러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간 사람으로, 갑옷을 입는 시대에 살지는 않았어도 나름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간 무도가로 기억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