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기로에서 무사들이 깨달았던 것

합기도 세계본부도장장 우에시바 미츠테루 선생의 기술을 받고 있는 윤준환 중앙도장장


합기도를 경험하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합기도를 변변찮은 무술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 거기에 반해 실제 수련생들은 기술이 다양하면서 대단한 무술이라고 알고 있다. 양쪽으로 상반된 이해의 차이는 새롭게 합기도를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혼란과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오히려 합기도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상반된 관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반된 것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합기도에 대한 지식이 넓어져야만 비로서 합기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합기도를 배우는 과정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만약 합기도가 배우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면 그것은 태생적으로 제한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합기도가 무도일 수 있는 것은 심오함에 철학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합기도를 배우는 과정은 먼저 자신을 합기도 세계에 맞추고 합기도를 세계에 맞추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실전을 얘기하며 잘 싸우는 걸 배우고 싶고 공격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고 지도자가 그런 생각을 가진 학생에게 사람을 다치게 하는 공격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무도가 아니다.

그가 정상적인 무도 선생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진 수련생에게 도장을 떠나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합기도는 어느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옛 무사들의 처절한 실제 전투기술로 부터 전해지고 습득되어 사람을 보호하는 무도로 발전된 것이다.

진검승부나 죽음에 대항해 싸우는 생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합기도를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생사에 대한 진지함이 결여되면 결국 사람들은 놀이를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선량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이기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이려 하고 악으로 가득한 사람이 등 뒤에서 총으로 쏘듯 공격하며 원하는 것을 얻고자 무슨 짓이든 하려 한다. 그런 자는 길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고 직장에도 있을 수 있다.

진짜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평화와 사랑이라는 철학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면 꿈에서 깨어나는게 좋다.

세상은 무자비하고, 더럽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 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에 감당할 수 있을 정도까지 레벨을 끌어 올릴 수 없다면 여러분은 꿈나라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항상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정신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여야 한다. 합기도 기술은 치고 막는 동물적인 단순한 반사동작과 같은 것들을 숙달 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합기도가 어려운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헌신적인 인내와 생사의 기로에서 무사들이 깨달았던 것으로 최소한의 저항점에서 육체적인 힘을 넘어서 작용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합기도가 어려운 이유이다.

일본에서 가토리신토류 검술 연무를 보이고 있는 윤대현 부자모습

 

*네이버 윤대현 블로그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