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승과 제자, 선택과 무한책임

장술 지도를 하는 고바야시 야스오 8단

“무도는 산과 같다.”

무도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산 정상에 가기 위해 출발선에 서있는 것과 같다. 무도는 산과 같아 정상에는 본받아야 할 스승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충분의 길이 있다. 그러하기에 수행은 괴롭고 힘이 든다. 그래서 처음 마음과 달리 출발점에서 또는 중도에서 방향을 바꾸고 또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초심자들은 또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작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든 힘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길을 선택한다. 또는 스승없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기 저기를 옮겨 다니는 사람도 있다. 유단자가 되었다고 해도 초심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도 있다. 여러 무술을 배웠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산 정상까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또다른 길을 선택하는 초보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 많다. 

유아기 때는 무엇을 해도 잘했다고 박수를 쳐주지만, 청소년기를 지나서도 자기만의 세상에서 자기 멋대로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유아처럼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예의와 인간성이 떨어진 자이므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나이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는 절차탁마의 무도에서는 나이가 레벨을 가늠하는 수단이 아니다. 따라서 나이가 많으면 원로가 될수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스승이 될 수는 없다. 스승은 제자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낄수 있다. 그럴때는 더 뛰어난 스승을 소개해 주어야 한다. 

“입문 시기와 상관없이 실력이 앞서고 있다면 출람(出藍)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 무도계의 진정한 예의다.”

합기도 창시자의 말년 수련모습

나이를 먹으면 육신이 노쇠하여 움직이는 것이 불편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핑계로 자기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스승도 선배도 될 수 없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실력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연세가 많은 선배 선생님들 중에는 혼자서는 도복도 입지 못하지만, 일단 도복을 입고 매트에 서면 후배들을 휴지조각 던지듯 놀라운 모습을 보인다. 어렸을때 운동하던 옛날 이야기나 하며 단증이나 팔고 있는 호칭만 선생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전업 무술지도자를 그저 생계형으로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은 옳지 않다. 프로는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문인을 말하기 때문이다. 프로선수가 자신의 실력을 정당한 연봉으로 환산하는 것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마추어로서 프로가 될때까지 제자로서 선택의 고민없이 따를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술을 시작할때는 선택의 고민없이 따를만한 스승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아마추어가 도장을 차리고 프로 행세를 하면 마케팅만 난무하게 된다. 스승은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다른 곳에서 당하지 않도록 기본기는 물론 변화와 응용기를 철저히 가르치고, 한가지 기술도 헛되이 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엉터리가 너무 많다보니 무술단증을 모두 합쳐서 몇십단이 되었어도, 유행에 따라 또다른 종목의 담벼락을 기웃거리는 이를 마주치곤 한다. 한가지에 대한 정통성 없는 것은 문제가 된다.

스승은 제자의 단위(段位)가 올라갈 수록 옥석을 가려내듯 승단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자질이 부족한 회원을 지도자로 만들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시간이 흐르면 자기 멋대로 실력과 무관하게 단증을 받고 싶어하며 또는 발행하려 든다. 그들은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을 욕되게 하고 선배들을 폄하하게 된다. 스승과 선배를 멋대로 평가하며 자신을 과시하는 이는 처음부터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