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기도는 나에게 무엇인가? -이윤범-

도장 수련중에 이윤범 교수님의 연무모습

내 자신의 기준으로 무술을 판단했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바로 떠났다.
그렇게  30년 이상을 허비했다.

나는 누구인가?

인도의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강조하였다. 인류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괴로움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어려운 화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다만 마하리쉬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 즉 생각이 없어야 한다고 했는데 난 생각이 많았다. 내 자신의 기준으로 무술을 판단했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바로 떠났다. 그렇게 30년 이상을 허비했다.
따라서 단순히 싸움을 잘하기 위한 무술을 연마한다면, UFC같은 피가 튀기는 경기를 보고 자신이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나는 그 동안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평생 수련할 수 있는 무술에 대한 호기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이대로 포기 할 수 없어 여러 무술을 전전하다가 50대 후반이 되어 합기도에 대한 관심이 있어 한번 참관해보기로 했다. 원의 기술을 많이 펼치는 동작들이 예전에 수련했던 무술들과 좀 달라보였다. 그 원의 기술로 보였던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타이사바키라는 보법을 기초로 한 독특한 몸놀림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 바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동작은 쉬워 보였으나 실제 몸으로 하려니 어려워 좌절감이 많이 다가왔다. 나이가 많아 몸이 따라 주지 않나하고 고민도 해봤다. 어렵고 안 되니 분노도 생기고 오기가 생겼다. 가장 어려운 것은 몸에 힘을 빼라는데 힘이 더 들어가는 현상은 또 무엇인가.

사실 이 세상 모든 운동의 가장 기본은 몸에 힘을 빼라는 것이라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몸에 힘을 빼는 순간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무수히 듣기는 했지만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더욱더 난감한 것은 실제로 힘을 빼는 것을 보여주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신체적인 조건은 아주 열악할 정도로 약해 보이는데도 대단한 파워를 보이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좌절과 호기심으로 수련을 계속한 결과 이번에 3단을 허락 받았다. 합기도를 시작한지 8년 만이다. 이전에 수련했던 다른 무술들에서도 이정도의 단을 받은 적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 받은 3단에 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평생 수련을 위한 일종의 기본자격증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가 많은 열정을 가지고 근무했던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진행하고 있다. 항상 학문과 무술의 경계선에서 두 분야 중 어떤 것에 열정을 더 많이 쏟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로소 해방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 나는 “합기도는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수련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50년 이상 평생을 수련한 선생님들이 자신은 초보자라면서 진정한 겸손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를 볼 때마다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앞으로 내 인생에서 남은 날을 추론하면 다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즈음에 103세에 이 세상을 하직한 어느 대학 설립자의 수필이 생각난다. “65세에 은퇴하고 30년 허송세월을 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95세에 어학공부를 시작했다.”라는 말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합기도를 마지막 내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합기도는 무술의 차원을 넘어 무도라고 생각한다. 단지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수행과도 밀접하기 때문이다. 또한 합기도는 나의 자존감이고 자존심이다. 즉 나를 사랑하게하고 나를 지탱해주는 무도이기 때문이다.

* 8년 동안 곁에서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지도해주신 윤대현 선생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