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합기도가 걸어온 길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

 해방 이후, 한국에서 시작된 무술중에 태권도와 합기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태권도와 합기도(Hapkido)가 다른점이 있다면, 태권도는 가라데와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 시작이 명칭제정에서부터 시작하였고 기술적인 발전과 국내외 보급에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그에 비해 합기도는 너무 안일했다. 

태권도의 태두(泰斗) 최홍희 장군은 일제강점기 주오(中央) 대학 유학 중 가라데(空手)를 배웠고 2단을 취득하였다. 해방이후 군문에 들어서서도 여전하였던 무도에 대한 열망이 국제태권도연맹(ITF)의 모체가 되는 오도관을 창설하고, 군과 사회에 태권도 바람을 일으킨다. 하지만 당수, 공수, 권법, 기타 등 통일되지 못한 명칭으로 불리워 오다가 1955년 명칭제정위원회를 통해 태권도(跆拳道)를 명명하였다.

이후 각 대학에 태권도부를 결성하고 학생태권도연맹을 조직 1958년 대통령의 재가를 얻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고 군 지위를 이용해 전 예비사단에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성공하면서 태권도가 공식화 되었다. 1959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창설됐다. 1961년 국군과 경찰에 태권도가 의무교육으로 지정되고 1965년 영문태권도교본이 발간되었다. 

1965년 예비역 2성 장군인 최홍희 장군은 정부로부터 국가태권도친선 사절단을 인솔하고 세계 여러나라를 순회하면서 태권도를 보급하며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1966년 3월 조선호텔에서 국제태권도연맹 창립총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최홍희는 총재는, 1977년경 박정희 대통령과 정치적 갈등을 겪다 캐나다로 망명하였다. 1980년에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에도 태권도가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김운용 총재를 주축으로 세계태권도연맹(WTF)이 만들어지고, IOC에 가입하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발돋움 하였다. 현재 태권도 조직은 올림픽 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F)과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이 전세계 태권도를 이끌고 있다.

중국 무술(唐手)이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에서 가라데(空手)로 새롭게 탄생하듯이, 가라데는 한국에서 태권도라는 새로운 무술로 재탄생을 하였다. 엄연히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잡은 태권도를 더 이상 가라데의 아류로 보는 이는 없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끊임없이 노력해서 얻은 아이덴티티다. 그렇다면 합기도는 어떤가?

<사진출처: 대동무 출판사 밝터>1963년~1966년 대구시 북성로에 위치한 마지막 수련관 간판

 먼저 한국합기도에 대한 역사를 논할 때 야와라를 배운 최용술 선생과 일본의 대동류유술이 빠지지 않는다. 최용술 선생에 대한 연구자료는 학계와 언론에서도 그동안 많이 다뤄져왔다. 그중에서 가장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윤 선생은 그의 저서 『대동무』에서 최용술 영감은 자신의 무명(武名)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야와라(柔)’라고 하였으나 일본 이름이라고 하여 삼가며 썼다고 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유권술(柔拳術), 유은술(柔殷術), 기도(氣道)를 쓰기도 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1970년 이후 합기도(合氣道, 일본어 발음이 아이키도)를 쓴 것은 본인의 뜻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최용술 선생이 제시한 것은 역술인 백운학 씨로부터 받은 기도(氣道)였고, 1963년 9월 최용술 선생을 총재로 하여 법인이 출발하였지만, 내부 갈등에 의해서 해임되고 말았다.

제자들이 최용술 선생에게 가져왔다는 책

합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가, 1950년대 어느날 회원이 合氣道 창시자인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소개하는 책을 가지고 와서 최용술 선생에게 보여주자 “내가 가르친 사람이다”라면서 합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선생이 자신의 무술명을 ‘야와라’라고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가,  결국 유도나 검도처럼 ‘도(道)’를 붙이는 시류에 편승하여 합기도라 작명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 있다. 

결국 1950년대 말부터 최용술 선생의 제자들이 하나 둘 도장을 열기 시작하면서 합기도라는 간판을 걸었다. 한국 합기도는 이렇게 탄생 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 정작 최용술 선생은 이름도 간판도 없이 도장을 운영했다고 김정윤 선생은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합기도는 최용술 선생에게 야와라를 배운 이들이 合氣道 명칭을 도용한 결과가 작금에 이르렀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당시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이 合氣道를 창시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명칭을 도용하는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한일국교가 정상화가 되리라고는 예상을 못했거나, 표절이나 지적재산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한 시절이었기에 그랬을지 모른다.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표절에 대해서는 날선 비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수 많은 동심을 속여왔던 애니메이션이 일본이 원작이었고,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가요가 사실은 수 많은 일본 음악의 표절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독도를 일본의 역사와 영토에 집어 넣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우익의 행태에 우리는 분노를 표한다. 마찬가지로 표절한 무술의 역사에 고구려 무사와 신라의 화랑을 끼워 넣으려고 애써봐야, 학자들은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로부터의 비웃음은 피하기 힘들다.
김정윤 선생은  “합기도 무명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 일본 합기도(Aikido)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키도의 기술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 합기도의 특성과 우수성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대 국제사회는 남의 것으로도 개발과 창조로 우수성을 확보해 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고유무예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무명은 반드시 달리해야 할 것이다. 남의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편집자 주; 세계무예마스터십 위원회는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에서 후원하는 2019년 충주대회에서 합기도와 한국합기도를 구분하고 있다. GAISF 종목 회원인 국제합기도연맹의 합기도를 정식종목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어 한국합기도는 이름을 바꾸지 않는한 IOC나 그 산하 국제스포츠 기구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사족(蛇足)

일본에 ‘아지노모토(味の素)’라는 조미료로 유명한 식품회사가 있다. 한국에도 ‘미원(味元)’이라는 회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상(大象)으로 바꼈다. 미원의 한자 ‘味元’을 일본식으로는 아지모토라고 읽는다. 아지노모토와 아지모토? 한국의 대표 식품회사가 사명을 바꾸는데는 단기의 부담과 장기의 가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는 어느 누구도 대상을 아지노모토의 아류라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도 당당한 글로벌 식품기업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