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전일본합기도연무대회 참가기 -사당중앙도장 박병호

몇 달 전부터 5월 전일본연무대회의 참가신청을 서둘렀고 비행기티켓도 일찍이 구해 두었다. 도쿄는 10년만의 방문이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를 절호의 찬스. 이런 특수한 목적에 미리부터 일 스케줄 조정을 해두고는 긴 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아이키도 수련에 초점이 맞춰진 이번 해외일정에 대해 솔직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한다.


수련의 첫 일정은 대한합기도회의 스승이신 고바야시 야스오 선생님의 도장수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쿄외곽의 고다이라에 위치한 도장. 전철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도장을 향한 발걸음에
동료들과 두가지의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고즈넉하고 화목한 느낌의 동네다. 너무 좋다!” 곧이어 “아니 그런데 도장운영이 되기에 조금 힘든 느낌이지 않아? 너무 외곽이야! “ 서울에서의 치열함에 찌든 우리는 어쩔 수없이 이런 현실적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장에 다다르자 미리 도착한 선배님들을 맞이하고 계신 고바야시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편안할 대로 편해져서 마치 가운처럼 보이는 도복에 세월이 느껴지는 빛 바랜 검은띠가……..
삐뚤게 매듭지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 순간 걸어오며 했던 걱정이 다 사라져버렸다.
“아, 사람들이 올 수밖에 없구나.”
“여유를 초월해버린 너무나 편안한 느낌이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수련이 시작되어서도 처음 발을 들인 것이 이상할 만큼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수련을 하는 것처럼 오해할지도 모르는데, 편안하게 만들어진 그 분위기가 대충 수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적절한 배려에 녹여진 확실한 자기수련의 당부. 모두가 땀으로 범벅이었으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아이키도를 전혀 몰랐을 때, 신촌도장과 이수도장을 견학했을 그때처럼. 이후 파티에서도,
숙소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도 좋은 기분을 가지고 갔다.

이튿날은 사실상 메인이벤트인 연무대회가 열리는 무도관으로 이동했는데 어제의 고바야시 선생님 도장수련의 여파로 인해 메인이 메인같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무도관 출입문에서부터 맨발에 도복차림의 대규모 단체를 보자 마자 “아 메인이다!” 해버렸다.
자꾸만 걱정이 빗나가서 좋은 당황을 하고 있었다. 연무차례상 한국팀은 여유가 있었기에, 초반에 무도관 분위기나 다른 연무팀을 지켜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수만명의 참가자, 팀별로 2분도 채 안되는 연무시간. 1년중 이날을 위해 칼을 갈고 닦는다!! 가 아니었다.
차례차례 보여주는 다양한 소속의 단체 연무는 자연스러운 평상시 수련의 모습 그 자체이지, 괜히 준비해서 화려하거나 으스대는 장기자랑의 무대가 아니었다.
관중석도 이겨라!! 져라!! 고함을 치며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감탄과 박수만이 오고 간다. 나와 동료들은 화목한 대회장 분위기에
“이건 세계규모의 친목동아리 모임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키도는 이기고 지는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키도는 화합이며 사랑이다.’ 라는 한국에서의 수련 중 들은 말을 실제로 체감하게 되는 장소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키도가 무도라는 느낌을 전달해주는 선생님들과 지도원들의 연무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만은 장내가 조용해지고 집중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아이키도의 역사를 만들어왔고, 만들어가는 분들의 연무를 지켜보는 관중석은 사실상 모두가 후배이고,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다. 마치 모두가 스스로 그걸 알고라도 있는 것처럼 놓칠 수 없는 인강을 듣는 자세로 연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 연무팀은 순서가 되어 자연스레 평상시 수련모습을 보여주었고, 별일 없었다는 듯 가뿐하게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셋째 날, 일본일정의 메인인 연무대회를 끝내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오전수련이 있는 세계본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키도의 메카인 도쿄본부를 간다는 기대와 호기심은 엄청났으나 한국도장에서의 수련처럼 하다가 오겠지 뭐. 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긴장을 놓은 것이 오산이었다.
시간이 되어 탈의실문을 들어서는 순간 안경이 하얘졌다. “음? 사우나에 잘못 왔나??” 탈의실이 맞았다. 엄청난 인파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몸을 부대끼며 도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생존의 몸부림으로 간신히 도복을 입고서 매트로 들어서니 땀이 비가 오듯 쏟아졌다. 이제야 정면에 예의만 갖췄을 뿐이었다. 전체가 새하얗고 깔끔한 공간. 정면엔 창시자 선생님과 2대 도주님의 액자, 그리고 커다란 합기도 족자만이 걸려있다.

지도원분들의 안내에 따라 모두가 정렬을 하고 정좌를 하자 장내에는 바깥의 새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렸다. 곧이어 도주님과 본부도장장님이 들어오셨고 새소리와 환풍기 소리만 들리는 수련이 시작되었다.
준비운동을 하며 본부도장의 기본규칙을 떠올린다.
‘처음의 우케로 1시간 수련을, 예의를 확실하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아차 오늘이 진정한 메인이구나, 벌써 조금 어지럽네’ 등등.
기술은 들은 대로 기본기의 반복 숙달이다. 도주님이 한기술을 네 차례 보이면 끝이다. 설명도, 팁도, 반복 연무도 없다. 그 찰나의 네 번을 집중해서 봐야한다.
나의 우케는 어느정도 연세가 있어 보이는 분이셨고 같은 삭발이라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인파가 상당해 제대로 수신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래서 몸을 더 말아야 하고 다른 팀과 부딪히지 않기 위한 신경을 쓰느라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도장을 가득 채운 사우나같은 열기도 한몫 했다.
기술자체의 수련도 수련이지만, 본부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버티는 것 자체가 수련이었다.
거기에 전혀 지친 내색이 없는 상대의 일정한 페이스유지에 놀라면서 우리 도장장님의 과거 이곳 지도원생활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후에 알았지만 나의 우케는 나고야 아이키도 대표 나카야마 6단 선생님이셨고 이미 한국과는 수차례 교류를 하신 분이셨다. (……..)
수련을 끝내고 도장을 나서자 회장님이 지쳐있는 한 유급자 회원분에게 웃으시며 “힘들어요? 이것이 무도이고, 이것이 수련이예요.” 라는 말씀을 하셨다.
본부도장수련을 한마디로 정의 내린 명확한 표현. 경험해본 중 가장 긴 1시간이었다.

짧았던 3일간의 아이키도 수련과 대회참석의 일정. 일본체류기간이 조금 더 있던 나와 아내, 동료들은 도쿄를 더 돌아보다가 입국했으나 3일간의 그 강렬한 경험이 체류기간 동안의 경험을 대신해주진 못했다.

한국에서 본부인 일본이나 다른 국가의 아이키도 활동을 알 수 있는 건 인터넷을 통한 일이 전부다.
유튜브와 각종 SNS 가 많이 활성화되어 꽤나 디테일한 정보도 앉아서 살펴보고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나 역시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무언가를 직접 조우해보는 일. 그것도 발상지나 메인 무대를 경험해보는 일이야 말로 큰 동기와 힘을 부여한다. 아무리 기록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눈과 몸을 통한 정신의 기록은 따라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도의 국가라고도 하는 일본에서의 체험은 아이키도 수련이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숨을 쉬는 것처럼 수련을 해야 한다는 회장님과 도장장님의 말이 확실히 이해가 된다. 특별한 날에만 시간을 내어 도장을 찾거나 일정기간 동안만 필요한 기술을 익힌다거나 단기간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선택했으면 계속 탐구하는 정신, 같은 마음으로 수련을 하는 동료와 함께, 올바르게 지도를 해주시는 지도원들과 선생님들이 좋아서, 나를 위해 매일수련을 하는 것. 현대사회의 무도수련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전쟁과 폭력기술의 습득이 아닌 인간의 선한 마음가짐을 계속 스스로 이끌어내는 노력말이다.

복잡하고 화려한 보여주기가 아닌 기본기에 정통한 세계본부도장을 주축으로, 고바야시 선생님의 도장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서 일상의 매일수련을, 매년 열리는 연무대회를 통해 스스로를 체크하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 전세계 아이키도인이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바임을 확인하고 뿌듯하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