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왜 가볍게 그만 두는 걸까?

합기도 창시자의 말년 수련모습

 

“따르릉!”

홍대에서 신촌도장으로 경의선 공원길 따라 산보하고 있는데 호주머니에 있는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접니다!”

지방에서 무에타이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옛 제자였다. 20여 년 전 나에게 무에타이를 배워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가끔 TV에서 격투기 주심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곤했다. 체육관 운영이 어려워 여러 번 옮겼다는 소식은 다른 제자를 통해 들었던 차였다.

“인사 차~하하, 별일 없으시죠? 선생님 칼럼 가끔 보고 있습니다. 다른 글들은 마음에 와 닫는게 없는데 선생님 글은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아마 제가 선생님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자주 찾아 뵈었어야 하는데 사는 게 힘들어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체육관은 잘 되나?”

“네, 새로 들어오는 회원이 많아서 나름 잘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잘 되시죠?”

“글쎄. 근 20년을 성인 전문도장을 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운동 좋아하는 성인이 얼마나 있을까?”

“저희는 들어오는 인원은 많은데 대부분 2, 3개월도 안돼서 가볍게 그만둬 버립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들어서 그렇겠지, 격투기가 편한 운동은 아니잖는가?”

“사진으로 보니까, 선생님 도장은 오래된 회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다수 지도자들은 자신의 뿌리를 정확하게 하고 싶어한다. 무도는 본래 도제식으로 전해지다보니, 스승을 모시고 오랫동안 함께 운동한 사람끼리는 형제와 다름없다. 훗날 자신도 누군가를 가르칠 때 그런 뿌리를 자랑스럽게 밝힐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선생을 찾는 옛 제자의 마음이 기특했다.

 

“한국 사람들은 스포츠와 무도를 구분하지 못하네, 그래서 무도도 스포츠로 여기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네”

“무도나 스포츠, 같은 것이 아닌가요?”

“땀 흘리고 운동한다는 점은 똑같지. 예를 들면 탁구나 테니스는 스포츠네, 가볍게 즐길 수 있지. 방법을 모르거나 잘 못하면 배우기도 하네, 그런데 그것을 평생 배우지는 않지!”

“오랫동안 배우는 것은 아니죠”

“스포츠는 프로가 아닌 이상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잠깐 하다 마는 것이지.”

“그렇군요.”

“사람들이 무술을 왜 배우는지 아는가?”

“이유는 많겠지요? 운동이 필요해서, 호신술로, 잘 싸우려고, 친구따라, 연애하러? 하하.”

“그렇지? 한국에서는 무술이라는 것을 어렸을 때 한때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강하지, 대다수 도장이 어린이 대상으로만 운영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아이에게 체력을 길러주고 자신감과 용기를 주려는 부모의 마음이 그런 것이지.”

“격투기도 젊은 사람들이나 하지 나이많은 성인들이 없어요.”

“무술을 싸움기술 정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성인들이 하지 않는 것이네”

“외국인들은 동양무술을 좋아하잖습니까?”

“UFC 대회가 시작되면서 동양무술의 신비함은 모두 힘을 잃어 버렸어, 어렸을 때 친구에게 맞았거나 싸움에 대한 두려움, 강한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무술도 비전과 같은 신비주의에 빠지곤 하지. 적어도 UFC가 나타나기 전까지 중국무술과 한국무술에는 그런 신비가 깔려 있었어.”

“UFC 때문에 무에타이하고 주짓수가 유명해졌지요!”

“맞아! 정말 강한 선수들의 대결장이지, 그런 선수들은 노력보다는 타고난 것이 많아. 무술을 싸움기술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합기도장들이 재빠르게 UFC에 편승해서 주짓수로 갈아탄 관장들이 많았지.”

“선생님은 왜 격투기를 시작하셨어요?”

“나? 나는 무술을 시작한 계기가 허약했다거나 친구들에게 맞았다거나,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아버지가 도장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운동했고 항상 대련을 했기 때문에 그때마다 이기려고 하다보니 커서는 얼마나 강한가 증명이라도 하듯이 격투기 시합에 나갔던 거야. 극진공수도 시합에 나갔을 때도 무슨 비기 같은 기술이 있어서 나간 것은 아니었어, 그냥 이기고 싶었지.”

“저도 선생님처럼 강해지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허약한 친구들이 싸움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도장에 가곤 했지. 실제 싸움에 연연하지 않았던 친구들은 야구, 배구, 농구, 축구 같은 구기종목에서 두각을 보이곤 했어, 축구부 친구가 있었는데 태권도하던 애들보다 더 강해 보였어. 실제 프로 농구나 축구 선수들을 보면 격투기 선수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그러고 보니까 운동 잘하는 선수들이 구기종목에 다 모여 있는 것 같네요.”

“무술하는 사람들 잘 살펴보면 비전이니 비기니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찾아, 동네 도장들이 유행에 따라 종목을 바꾸는 것은 무술을 싸움기술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잘 싸우는 것으로 바꾸는게 당연한 것이네.”

“저도 무술을 잘 싸우는 기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이 다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서 도장에 오는 사람들이 싸움기술이나 호신술 배우려고 오기 때문에 조금 배우다 그만두는 것이네.”

“아! 그래서 가벼운 스포츠라고 하셨군요?”

“그렇네, 한국에는 고단자가 많지만 구도(求道)하며 무도의 질을 높인 선생이 없어. 도장은 어린이 체육교실로 바뀌고 마케팅만 발전시켜 놓았지, 그냥 가볍게 즐기다 그만두는 스포츠에 불과해.”

“관장들이 무술을 생계형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생계형으로 도장을 하는 선생들이 별로 없어, 무도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아. 거의 다 직업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무도 본연의 심신수양에 집중할 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되네.”

“한국에서는 생업으로 도장을 하는데 일본은 좀 다르군요.”

“생각해 봐, 칼싸움 하는 시대도 아닌데 싸움기술로 돈 번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군요.”

“나도 무술이라는 것을 싸움기술 정도로만 생각하고 아무 의심없이 해 오다가 일본에 갔을 때 나이 많은 성인들이 위주가 되어 수련하는 것을 보고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많이 노력했어.”

“그게 뭔가요?”

“무도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이네.”

“뭐가 다른가요?”

“무도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네, 몸을 반듯하게 만들고, 바르게 사용하며, 마음은 관대해지는,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해, 힘든 수련을 피하지 않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고, 체력과 심리적인 건강을 끝까지 유지하며 지켜 나가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지. 잠깐 하다가 마는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힐링의 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아이키도는 왜 시합이 없습니까?”

“무도는 도를 구하는 것이지,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네, 유도가 올림픽 스포츠가 되면서 승부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유도가 망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네, 그래서 일본검도 관계자들은 절대 올림픽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반대를 하고 있고, 오히려 외국에서 올림픽에 들어가야 한다고 더 혈안이 되어 있네. 합기도는 창시자가 처음부터 시합을 금지시키고 무도 본연의 구도에만 신경쓰도록 한 것이네.”

“심오하군요.”

“호신술 몇 가지 익히기 위해서 온 사람에게 구도를 설명하면 부담스러워 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네, 그것은 무술을 가벼운 스포츠 정도로 바라보고 왔기 때문이네.”

“저도 제가 가르치고 있는 운동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살면서 건강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아, 정신이 평온하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네, 위험한 조현병 환자가 너무 많아졌어, TV를 보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살인을 하고 있네.”

“그래서 운동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네! 훈련은 경직되어 있는 몸의 긴장을 해소하고 뇌를 편안하게 만드네. 운동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개운해지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몸이 경직되고 긴장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표시네. 우리는 훈련을 통해서 몸을 실하게 만들면서 이완시켜 가는 것이네. 발경이나 합기는 허와 실의 순간적 이동이며 변화의 극치라 할 수 있지. 그런 것은 쉽게 습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을 두고 연구하는 것이지.”

“도장은 무도를 해야 한다는 말씀,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공격성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그것을 자제시키고 더 좋은 쪽으로 발산하고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네. 어떤 무술의 비기를 배웠기 때문에 강해졌다는 것은 착각이네, 비전무술을 익혀서 UFC에서 승리했다는 얘기는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

“일반 사람들은 어떤 무술이 실전에 더 강한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만들고 지도자와 같은 큰 인물로 변화시키는 수양과 구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네. 무술을 오직 싸움기술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은 UFC 를 보면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말하곤 하지, 한마디로 무도를 모르는 한심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네.”

“선생님이 무에타이 협회장까지 하시다가 왜 아이키도로 갔는지 이해가 됩니다.”

“다양한 비기에 심취해서 논리적인 설명을 하며 가르치는 사람 중에는 싸움에 대한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도 많이 있네. 스포츠와 다르게 무도는 삶속에서 함께하는 것이네,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뜻을 가졌다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하지. 도장이 그런 수양의 역할을 하는 곳이어야 하네.”

  “수양,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나이 많은 노선생들이 나서서 가르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전적이 좋아도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무도 수련은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시키며,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네.”    

“수양하는 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전화를 잘 한 것 같습니다.”

“먼저 모범을 보이면 회원이 자연스레 많아 질거야.”

“말씀 고맙습니다.”

라일락과 철쭉이 아름답게 핀 공원에서 옛 제자와 통화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윤대현
국제합기도연맹(IAF) 한국대표 아시아합기도연맹 한국대표 (사)대한합기도회 회장 국제합기도연맹 공인 6단 신촌 본부도장 도장장 국제합기도연맹(IAF) 공인사범 도장연락처: 02-3275-0727 E-mail:aikidokore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