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so happy – 마치다시 일중국제연무대회 참가후기

2018년은 유독 보내기 힘든 해였다.

직업 특성 상 9월부터는 업무강도가 강해지는데 여기에 비염까지 발병했다.

몇 달간 회사업무는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바빴고 비염으로 인해 약을 달고 살면서 피로감도 점점 쌓여갔다. 퇴근하면 도장 갈 생각에 다시 에너지가 샘솟던 예전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도장으로 향하는 나의 모습만이 있었을 뿐이다.

수련이 끝나면 잠들기 전 항상 하던 이미지 트레이닝도 더 이상 되지 않았고, 평소 느낀 점을 적곤 했던 수련후기도 써지지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이키도도 검술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정체된 듯 마음도 점점 힘들어졌다.

새해를 맞이하며 뭔가 변화를 줘야겠다는 초조함에 새해 다짐을 해보지만 그 다짐을 지키려는 노력조차 하고 싶지 않은…밑도 끝도 없는 무력감.

도대체 왜 그런지, 어떻게 하면 다시 활력이 도는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답이 보이지 않던 몇 달을 보내고…

대한합기도회 2019년 첫 국제행사인 마치다시 일중국제연무대회가 이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지난 1월 31일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리타 공항 도착

공식일정은 2월 2일 리허설, 2월 3일(행사당일) 연무대회와 파티가 있었고, 비공식적으로 2월 1일과 4일에 스가와라 선생님 도장에서 특별수련이 이루어졌다.

1일 예정된 특별수련을 위해 오전 9시가 지나자 한국, 핀란드, 미국,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온 가토리 회원들이 하나, 둘 도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시작시간은 10시부터였지만 그 시간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듯 간단히 몸을 풀고 바로 수련에 돌입했다.

첫날 수련에서는 특히 핀란드의 에릭 선생과의 대련이 가장 인상깊었는데 그 커다란 몸으로 어찌나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이는지 내 손목, 배, 머리를 무수히 베고 지나갔고, 그 압박에 대응하느라 팔뚝에 힘이 잔뜩 들어가 검을 쥐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누군가와 대련을 하고나면 나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기 마련인데 에릭 선생과 대련이 끝난 후에 내 머릿속에는 혼란스러움만 남았다. ‘대체 내가 왜 베인거지….’

한국팀이 오면 수련에 활기가 띈다며 I’m so happy를 연발하시던 스가와라 선생님의 흐뭇한 미소에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했던 첫날이다.

연무대회 파트너는 스가와라 선생님이 정해서 공지를 하시는데 2일 진행되는 행사 리허설에서는 본인의 파트너와 연무 연습을 하면서 다른 회원들과도 수련을 하게 된다.

리허설에서 파트너와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파트너와의 연습이 끝나고 다음 상대를 찾는 나의 눈에 나가노 선생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스가와라 선생님을 비롯한 도장회원들과 연무대회 연습을 하고 계셔서 이러다 할 기회를 잡지 못하던 나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기회라기보다는 무턱대고 들이댔다는 표현이 좀 더 옳을 것 같지만… 일단“오네가이시마스!”

2년 전에는 리허설에 참석하지 않으셔서 행사당일 연무하시는 모습만 봤지만 올해 드디어 검을 맞대었다.

오랜 수련에서 나오는 여유랄까. 오랜 경험을 증명하듯 내가 아무리 파고들어도 나와 나가노 선생과의 간합은 전혀 가까워지지가 않았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나는 벨 수 없지만 선생은 날 벨 수 있는 거리. 나만 숨 가쁘고 나만 바빴던 대련.

후배라 얕보지 않고 가타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상대해주시는 나가노 선생님의 모습은 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검술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검술을 평생무도라 할 수 있을까.

최근 1년 동안 검술에 대한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았다. 해답을 찾지 못해 답답했었는데 나가노 선생과의 대련에서 그 답답함이 상당부분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리허설 후 단체사진

드디어 연무대회 날이다.

한국팀 연무는 오전에 있었는데, 두 팀으로 나눠 켄조아이 1~4번, 5~8번을 선보인 후 윤준환 사무국장이 아이키도 연무를 선보였다.

행사에 참가한 한국팀 단체사진

오후에는 모쿠로쿠 및 교시멘쿄 수여식을 시작으로 오모테-보-나기나타-고교-료툐․코다치․시찌조-야리 순으로 가토리 연무가 진행되었다.

고교 연무를 마친 나는 바로이어 료토․코다치․시찌조를 선보일 신랑(송경창 면허)의 연무를 보고자 무대 사이드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무대 뒤로 나가지 않자 나의 파트너도 내 옆에서 다음 연무를 같이 구경하였는데 신랑이 나오고 멋지게 료토 1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의 파트너에게 신랑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신랑을 가리키며 말했다.

“He’s my wife.”

순간 파트너의 눈이 커지더니 잠시 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반응이 왜 이러지?’하는 순간 나의 실수를 깨닫고는 “Oh no. He’s my husband.” 라 정정한 후 파트너와 터지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남은 연무를 관람했다.

My wife~♡

 

이 날은 하루 종일 신랑이 주위 사람들에 나를 husband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바람에 여기저기 웃음꽃이 활짝 핀 날이었다;;

평소에 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연무대회가 끝나고 뒤풀이 파티가 이어졌다. 준비된 음식과 술을 나눠 마시며 서로에 대한 소감을 나누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며 우정을 다졌고, 화기애애한 파티 분위기는 스가와라 선생님의 취권(?) 세레모니에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파티가 끝난 후 해외선생들의 요청으로 도장에서 또 한 번의 파티가 있었고, 전 세계에서 모인 가토리 회원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뒤풀이 파티

나에게는 마지막 수련이었던 4일 오전수련.

이 날은 한국, 핀란드, 러시아, 스웨덴 회원들이 특별수련에 참가하였고, 교시멘쿄가 무려 9명이나 참가해 수련 열기를 더했다.선생들과 한번이라도 검을 겨루고픈 마음에 면허 1명 당 대기번호가 5번을 넘어가기도 했고, 한번에 2팀밖에 사용할 수 없는 도장의 크기를 아쉬워하는 회원도 있었다.

직접 대련을 함으로써 얻는 것도 많았지만, 면허가 대거 참가한 이번 수련에서는 다른 사람의 대련을 보는 것으로도 얻는 것이 많았던, 그 어느 때보다 눈이 즐거웠던 수련이었다.

수련시간이 훌쩍 지나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는데도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스가와라 선생님께서 직접 나서서 수련을 끝내셔야 했을 정도다.

이번 행사에는 스가와라 선생님의 60년 무도인생을 축하하는 자리가 함께 마련되어 더욱 뜻 깊었다. 본인의 나아갈 길을 정하고 그 길을 60년 동안 걸어왔다는 건 그 누구라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하물며 스가와라 선생님이라니…

다른 해보다 유독 더 행복해보이시던 스가와라 선생님.

전 세계에서 모인 제자들이 시간도 잊은 채 수련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쁘고 얼마나 큰 감동이었을지 지금의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60년 후의 나의 모습도 선생과 같기를 바란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가 정한 이 길을 포기하지 않기를.

연무대회 단체사진

스가와라 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내 귓전을 울린다.

I’m so happy.

 

매번 제자들이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시는 윤대현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