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무리수 –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7)

– 합기(合氣)의 원리를 『삼일신고』에서 찾으려는

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시도는 왜 잘못된 것인가 –

 

■ 복습, 그리고 틀린 곳 찾기

 

순서대로 따라가 보자.

 

 

  1. 『삼일신고』 신훈(神訓)의 시작 부분

 

하느님은 가장 높은 자리(근본 자리)에 계시니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만드셨으며

 

神은 在無上一位하시니 有大德大慧大力하사 生天하시며

신 재무상일위 유대덕대혜대력 생천

  • 큰 덕(大德)과 지혜(大慧)와 힘(大力), 이 순서에 주목

 

 

  1. 『삼일신고』 진리훈(眞理訓)의 시작 부분

 

사람과 만물은 세 가지 참된 것을 받았으니 이것을 성(性)과 명(命)과 정(精)이라 한다.

사람은 성명정을 온전하게 받았으나, 만물은 치우치게 받았다.

 

참 본성은 선하고 악함이 없으니,

이것을 아는 것이 가장 큰 깨달음으로 ‘통(通)’이라 한다.

 

참 생명은 맑고 흐림이 없으니,

이것을 아는 것이 그 다음 깨달음으로 ‘지(知)’라 한다.

 

참 정기는 두터움도 엷음도 없으니,

이것을 아는 것이 그 다음 깨달음으로 ‘보(保)’라 한다.

 

人物이 同受三眞하니 曰性命精이라. 人은 全之하고 物은 偏之니라.

인물 동수삼진 왈성명정 인 전지 물 편지

 

眞性은 無善惡하니 上哲이 通하고

진성 무선악 상철통

 

眞命은 無淸濁하니 中哲이 知하고

진명 무청탁 중철지

 

眞精은 無厚薄하니 下哲이 保하나니

진정 무후박 하철보

  • 성명정(性命精)과 통지보(通知保)의 순서에 주목. 여기서 『회삼경』의 <통성(通性), 지명(知命), 보정(保精)>이 나오게 됨

 

 

  1. 『삼일신고』 진리훈(眞理訓)의 중간 부분

 

뭇 사람들은 미혹되어 세 가지 망령된 것에 뿌리를 내리니

이것을 심(心)과 기(氣)와 신(身)이라 한다.

 

惟衆은 迷地에 三妄이 着根하니 曰心氣身이라.

유중미지 삼망 착근 왈심기신

 

(중략)

 

참된 것(眞)과 망령된 것(妄)이 서로 작용해 세 갈래 길을 만드는데

이것을 감(感)과 식(息)과 촉(觸)이라 한다.

 

眞妄이 對作三途하니 曰感息觸이라.

진망 대작삼도 왈감식촉

  • 심기신(心氣身)과 감식촉(感息觸)의 순서에 주목

 

 

  1. 중간점검

 

『삼일신고』는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5)’를 마치면서 ‘성-심-감, 명-기-식, 정-신-촉의 구조’, 그리고 “감식촉을 잘 조절하여 심기신을 조화롭게 관리하면 성명정의 참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구절을 잘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었다. 다시 한 번 떠올려 보자.

 

 

  1. 대종교 『회삼경』 제2장 세 밝은 이(三哲)의 시작 부분

 

회삼경 - 통성지명보정, 원방각

  • 통성(通性)-지명(知命)-보정(保精)과 허(虛)-명(明)-건(建)의 순서에 주목

 

 

  1. 대종교 『회삼경』 제9장 하나로 돌아감(歸一)의 중간 부분

 

회삼경 - 합혜

  • 윗 단락에서는 태허(太虛)-통성(通性)-합덕(合德), 대명(大明)-지명(知命)-합혜(合慧), 지건(至健)-보정(保精)-합력(合力)의 순서에 주목

 

  • 아랫 단락에서는 지감(止感)-심평(心平), 조식(調息)-기화(氣和), 금촉(禁觸)-신강(身康)의 순서에 주목

 

 

  1. 종합

 

『회삼경』 제9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회삼경 - 회삼지일도

 

지금까지 순서대로 잘 따라왔으면 그림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감식촉을 잘 조절(= 지감, 조식, 금촉)하여 심기신을 조화롭게 관리(= 심평, 기화, 신강)하면 성명정의 참된 상태(= 통성, 지명, 보정)에 이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이 큰 덕과 지혜와 힘(= 합덕, 합혜, 합력)으로 나타나 결국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1. 틀린 곳 찾기

 

자, 이제 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주장으로 돌아온다.

 

“합기도 수련이념을 인간의 본질인 마음(心)을 통해 덕을 갖추려는 통성(通性), 인간의 본존인 기(氣)의 올바른 활용을 통해 지혜를 갖추는 지명(知命), 그리고 인간의 본태인 육체의 균형과 조화를 통한 보정(保精)을 구현함으로써 힘과 지혜, 그리고 덕을 완성하는 데 두고 있다.

 

또한 합기도 수련의 원리를 합기법과 합기술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 합기법 : 삼법인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회통하여 힘, 지혜, 덕을 얻고자 하는 정신적인 수련

    (이하 생략)”

 

 

독자께서는 사이비 합기도 단체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눈치 채셨는가.

그렇다. 지감, 조식, 금촉 수련을 통해 얻는 것은 ‘덕, 지혜, 힘’이라고 해야 순서가 맞다.

 

순서가 조금 달라졌다고 무슨 큰 문제가 되겠냐고?

문제가 된다.

 

 

앞서 살펴보았듯 경전은 일관되게

해서 평해서 통해서 합해서 하느님과 하나 되고,

해서 화해서 지해서 합해서 하느님과 하나 되고,

해서 강해서 보해서 합해서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있다고 알려 주는데,

사이비 합기도 단체는 스텝이 꼬인 것도 모른 채 ‘지감, 조식, 금촉’을 통해 ‘힘과 지혜와 덕’을 얻고자 한다고 말해 온 것이다. 맞다, 기화(氣和)를 기화(氣化)라고도 했었지…

  •  필자(정성진) 주 : 사이비 합기도 측의 또 다른 자료에서 “기화(氣化), 지명(知命), 합혜(合慧)라는 구절에서 합기의 시원을 찾는다”고 한 것은 이것이 숨을 고르는 ‘조식(調息)’ 라인(line)에 있는 말이니까 순서대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의도는 불만스럽지만 형식에 대해서는 크게 시비 걸고 싶지 않다. 다만, 여기서도 기화(氣化)는 기화(氣和)라고 써야 옳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처음에 누군가 실수로 덕과 지혜와 힘의 순서를 바꿔서 썼고, 기화(氣化)도 오타였다고 치자.

만약 사이비 합기도인들의 주장처럼 사이비 합기도가 『삼일신고』의 원리를 기초로 개발되고 발전한 것이라면, 그래서 사이비 합기도인들이 『삼일신고』를 성심을 다해 공부해 거기서 합기(合氣)의 원리를 찾아낸 것이 맞다면 이렇게 쉽게 눈에 띄는 오류를 수십 년 동안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이비 합기도인들이 오랜 기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믿어온 문장을 수정해 줘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많이 다듬는 것이 좋겠는데 그네들이 쓴 글이니까 원문을 최대한 살린다.

 

< 틀린 문장 >

“합기도 수련이념을 인간의 본질인 마음(心)을 통해 덕을 갖추려는 통성(通性), 인간의 본존인 기(氣)의 올바른 활용을 통해 지혜를 갖추는 지명(知命), 그리고 인간의 본태인 육체의 균형과 조화를 통한 보정(保精)을 구현함으로써 힘과 지혜, 그리고 덕을 완성하는 데 두고 있다.”

 

  • 합기법 : 삼법인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회통하여 힘, 지혜, 덕을 얻고자 하는 정신적인 수련”

 

< 맞는 문장 >

“합기도 수련이념을 인간의 본질인 마음(心)을 통해 덕을 갖추려는 통성(通性), 인간의 본존인 기(氣)의 올바른 활용을 통해 지혜를 갖추는 지명(知命), 그리고 인간의 본태인 육체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힘을 갖추는 보정(保精)을 구현함으로써 덕과 지혜와 힘을 완성하는 데 두고 있다.”

 

  • 합기법 : 삼법인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을 회통하여 덕, 지혜, 힘을 얻고자 하는 정신적인 수련”

 

 

단언한다.

 

사이비 합기도인들은 나름의 수련 체계를 만들 때 『삼일신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충 이름만 가져다 쓴 것이다. 『삼일신고』가 우리나라의 오래 된 경전이라고 하니 그럴싸해 보여서 그랬을까. 심지어 그 내용은 다른 경전에서 가져온 것인데도 『삼일신고』에서 사이비 합기도의 이념과 원리를 찾는다고 해 왔다.

 

사이비 합기도인들이 애타게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사이비 합기도는 수십 년 동안 독자적인 수련 체계를 구축하면서 한국화 되었다. 그냥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사이비 합기도를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무술로 만들려고 하다가 탈이 나고 말았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리고 중간에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무섭지 않은가.

 

 

 

대종교는 잘못이 없다

 

글을 쓰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독자들이 마치 대종교의 교리나 경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종교와 대종교 경전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는 대종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번에 대종교 경전을 읽으면서 이렇게 귀한 말씀을 물려주신 우리의 선조, 그리고 선조들의 가르침을 잘 전하기 위해 제2, 제3의 새로운 경전으로 발전시킨 대종교 지도자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실 대종교 경전은 그냥 읽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한글 전용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해석을 조금 더 쉽게 바꾸고, 문체를 세련되게 다듬는다면 누구나 가까운 곳에 두고 읽으면서 삶의 지혜를 얻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종교와 대종교 경전에 대해 혹시나 작은 오해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첨언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