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합기도는 그 合氣道가 아닌데…’

격앙된 목소리로 다짜고짜 따지던 어떤 분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거기 뭐 하는 곳입니까?”
“아이키도 도장입니다만, 무슨 일이신지요?”
“당신 일본인이요?”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아니, 한국인이 왜 한국말을 두고 일본말을 사용합니까?”
당시 도장 홍보를 위해 현수막 광고를 했었는데, 현수막에 「아이키도(合氣道)」라고 쓴 것이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해 드렸지만, 그분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도장들을 보니까 한자 合氣道를 모두 ‘합기도’라고 하는데, 왜 거기만 ‘아이키도’라고 합니까?”
결국, 나는 더 이상의 설명을 포기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키도’를 빼고 合氣道라는 문구만을 사용하여 현수막을 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저희가 얼마 전에 이사를 왔는데, 이전에 살던 곳에서 제 아이가 합기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계속 시키려고요.”
몇 가지를 물어 확인해보니, 아이는 合氣道가 아닌 다른 합기도(?)를 했던 것이었고, 나는 그것을 지도할 수 없다고 설명해 드렸다.
“아니, 그러면 아이키도라고 하셔야지 왜 합기도라고 적어 놓으셨어요? 사람 헷갈리게.”
나는 퉁명스러운 말과 함께 끊어진 전화기를 한참이나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언어는 상호 동일하게 인식해야 할 정보를 담는 것이고, 문화와 감정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의 씨앗이 되는 단어는 그 의미와 상징이 명확해야 한다.
만일 단어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면 혼란과 오해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불신과 분쟁까지 야기하게 된다.
한국인이라면 ‘태권도’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할 것이다.
‘태권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분명하고, 그것이 또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택견, 유도, 검도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合氣道를 ‘합기도’라고 읽는다.
그래서 合氣道는 ‘합기도’다.
그런데 合氣道를 ‘합기도’로 읽으니 다른 문제가 생긴다.
합기도라는 명칭을 똑같이 사용하는 전혀 다른 ‘합기도’가 있는 것이다.
跆拳道라는 태권도가 있는데, 또 다른 태권도가 있는 꼴이다.
혹자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해야 할 언어의 문제이고, 인식의 문제이며, 소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진 – 1. 일본어 한국어]
[사진 – 2. 한국어 일본어]
[사진 – 3. 한국어 영어]
인공지능을 사용한다는 구글 번역기에 일본어로 合気道를 입력하고 한국어로 번역을 해 보았다.
‘아이키도’라고 번역할 줄 알았던 구글 번역기는 合気道를 ‘합기도’라고 번역했다.
반대로 ‘합기도’를 일본어로 번역하니 그 역시 合気道로 나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어 입력창에 합기도를 입력하고 영어로 번역해 보았다.
‘Aikido’
구글 번역기는 合氣道는 합기도이고, 합기도는 Aikido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전 세계 사용자의 언어를 분석한다는 구글 번역기가 번역한 합기도는 도대체 어떤 합기도를 말하는 것일까.
[사진 – 4. 현대 합기도 교본]
이 책은 1989년 출간된 합기도 교본이다.
이 책은 현재까지 제목과 표지, 내용 그대로 인쇄되어 판매되고 있다.
28년 동안 같은 제목 그대로 판매되고 있는 이 책에서 말하는 ‘합기도’는 도대체 어떤 합기도를 말하는 것일까?
[사진 – 5. 카모메 식당]
국내의 많은 영화 애호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은 ‘카모메 식당’의 한국어 자막도 合氣道를 ‘합기도’로 번역하고 있고, 국내에 출간된 원작 소설에서도 合氣道를 ‘합기도’라고 번역하고 있다.
[사진 – 6. 우치다 타츠루]
프랑스 현대사상의 석학이자 合氣道 7단인 우치다 타츠루 교수의 ‘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를 비롯한 여러 저서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는데 合氣道를 모두 ‘합기도’로 번역하였다.
[사진 – 7.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국내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잭 캔 필드의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책에서도 合氣道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어김없이 合氣道를 ‘합기도’로 번역하였다.
[사진 – 8. 란도리법칙 이빌하트]
이 외에도 2003년 번역 출간된 경영서 ‘란도리 법칙’, 2006년 번역 출간된 만화 ‘이빌 하트’ 등 수많은 외국 번역서에서 合氣道를 ‘합기도’로 번역하고 있다.
이 많은 사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한 인공지능의 번역 실수이고, 그저 合氣道에 대해 잘 모르는 번역가들의 실수에 불과할까?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콘텐츠의 영화와 도서, 영상물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번역 기술의 발달로, 그동안 한국 대중에게 쉬쉬 되어 왔던 ‘합기도’ 명칭에 대한 문제는 이제 더는 숨길 수 없는 주제가 되었고, 대중의 혼란은 임계점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대중에게 ‘이것도 合氣道’이고, ‘저것도 합기도’라며 대충 얼버무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合氣道를 어떻게 읽고 어떤 것으로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역시 한 개인 또는 단체가 말싸움이나 힘겨루기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은 대중이 결정할 문제다.
대중이 合氣道를 ‘합기도’로 읽는다면 그것이 옳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合氣道를 굳이 ‘아이키도’로 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늦기 전에 합기도의 명칭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대중은 合氣道를 ‘합기도’라 하는데, 合氣道가 그 ‘합기도’가 아니라 하고, 合氣道를 ‘아이키도’라고도 하고, ‘합기도’가 ‘합기도’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제 매듭지어야 한다.
合氣道, 합기도, 아이키도, Aikido가 모두 같은 것이고, 이 혼란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대중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인식시켜야 하는 것이다.
‘합기도’의 이 혼란스러운 정체성에 질려 대중 스스로가 등을 돌리기 전에 말이다.
몇 해 전, 한 지인에게 우치다 타츠루 교수의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책을 선물한 뒤 며칠 후, 책을 받은 그 지인이 좋은 책을 선물해 줘서 고맙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면서 자신도 어릴 때 합기도를 했고 초등학생인 자녀도 현재 합기도 도장에 다니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아들과 함께 우치다 타츠루 교수의 도장을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며, 혹시 우치다 타츠루 교수와 인연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합기도는 그 合氣道가 아닌데…’
혹여 속마음을 들킬까 나는 잘 모르겠다며 서둘러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지인이 어렸을 때 배우고, 현재 자녀가 배우고 있다는 합기도가 우치다 타츠루 교수가 말하는 그 合氣道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지인이 느낄 혼란과 배신감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 두서없는 졸필에 반감이 드신 분들이 계신다면, 이 글에 27번 표기된 ‘合氣道’를 어떻게 독음하셨는지만을 묻고 싶습니다.
※ 이상 문학상과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소설가 김연수 씨의 칼럼을 아래와 같이 링크하오니, 본 글을 읽은 독자분은 合氣道 명칭에 대한 관점으로 일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