悟道

<사진: 고바야시 선생에게 지도 받고 있는 필자>

벌써 30년 가까이 된 기억이다. 일본에 여러 유명 선생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할 때였다. 고바야시 도장에서 함께 수련하고 있던 유단자에게 질문을 했다.

“일본에는 유명한 선생들이 많은데 당신은 그런 선생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있습니까?”

“저는 고바야시 선생 한 분에게만 집중합니다. 고바야시 선생처럼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죽비로 얻어 맞은듯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고바야시 도장 지도원이 되었고, 여전히 수련에 정진하고 있다.

<사진: 필자 어렸을때 도장 앞에서 폼사진>

그 이전까지 나는 국내에서 평생을 통해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따를만한 선생도 없었다. 내가 했던 무술은 싸우는 재주에 불과 했고 배우기 위해 일본을 처음 다닐 때만 해도 몇가지 테크닉을 추가해보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선생은 얼마나 제자를 잘 키웠는가를 보면 그 선생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제자를 잘 키우는 것이 스승의 자질이라 생각한다. 훌륭한 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무술이 갖고 있는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분야에서 최고의 선생을 찾는 노력을 경험해야 한다. 정통한 모든 무술은 단계별 성장을 위한 교학(敎學) 체계가 갖추어져 있다.

 

기본 카타(型, 형태)가 있고 그것으로 부터 진화되어가는 변화와 응용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된다. 그래서 유단자가 되면 그때 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단자가 되면 마치 다 배운 것처럼 떠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교학체계의 한계이며, 대체로 가르치는 선생의 자질과 관련이 있다.

최근 검술과 관련한 행사가 집중되면서 검과 체, 즉 검술과 체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스가와라 선생은 부드러우면서 힘있는 검술을 하라고 지적하신다. 지난주 호쿠신잇토류 마도카 종가가 왔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까 생각하면서 던진 질문이 있었다.

“검을 다룰때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검을 얼마나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검술이 형태(카타)를 위주로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스가와라 선생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카타를 모두 익히고 나면 무엇을 합니까?”

“내가 처음 왔을 때는 카타를 가르쳐주었지만 지금은 카타가 아니지 않는가!”

 

마도카 종가는 비슷한 질문에 대해서 자신은 가르치는 커리큘럼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해하기 쉬운 말이지만 레벨이 높은 제자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나는 교수면허를 받기 전까지는 검술이 그냥 빠르고 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검을 아주 가볍게 사용하고 또는 강하게 사용하고 있을 때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몸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각자의 레벨에 따라 감당할 수있는 또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은 알려고 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이런 것이다. 선생은 실력이나 능력에 따라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처음 초심자에게는 기본을 가르치고 그것을 익히고나면 다음을 가르친다.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스스로 고민하고 보았던 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훈련하라.”   

초심자에게 맞지 않은 기술을 가르치게 되면 선생이 제시하는 의도와 반대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완전하지 못한 자가 나서서 가르치는 것은 쿠세(癖, 편향된 경향이나 성질)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면허를 받기 전까지는 절대 가르치려 해서는 안된다.

 

도장에 찾아오는 학생들 중에는 무언가를 배웠다고 해서 살펴보면 나쁜 쿠세가 고치기 어려울 정도까지 발전해 있는 것을 보곤 한다. 선생은 학생의 능력에 맞게 다양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선생은 쉼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 이름있는 선생들은 초심자 때 가르치는 것과 단위에 따라 가르침도 달라진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능력 밖의 재능을 바라고 여러 선생을 기웃거리며 인간적 끈을 놓아버리는 실수를 한다.

 

검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한다. 아이키도는 검을 몸으로 표현하는 무술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술을 배우고 나서 부드러움을 잊어버리곤 한다. 무술은 무도로 발전한다. 그것은 오도(悟道)를 향하는 길이고 자신이 서있는 곳과 가야 할 길을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사진: 스가와라 선생에게 검술 지도 받고 있는 필자>

 

강하지만 부드럽게 사용해야 하는 검처럼 우리의 인생도 같아야 한다. 무도가 깨달음이 없다면 그것은 한낮 살생을 위한 기술에 불과하다. 그런 것이 얼마나 오래 갈까?

 

검도와 유도 그리고 합기도(Aikido)는 기본적으로 카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고바야시 선생 처럼만 해도 원이 없겠다고 했던 유단자처럼 자신의 능력에 맞는 형(카타)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직 형태만 있고 그것만을 위한 운동이라면 심사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옛부터 무사는 선(禪)에 관심이 많았다. 결가부좌를 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좌선(坐禪)만큼이나 발걸음을 옮기면서 깨닫는 행선(行禪)도 중요하다. 검도는 검으로 깨달음을 추구하고 유도는 유술로 추구한다. 합기도는 아이키(合氣, 기술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포함)로 그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아이키도(合氣道)를 움직이는  선이라고 하였다.

 

무도란 강함에 대한 깨달음이지만 얼마나 부드러워 질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20년전 국립경찰대학교에서 필자와 훈련중인 성주환 지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