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합기도계 현실 드러낸 세 가지 사건

지난 여름, 대한민국 무도계, 그중에서도 합기도와 유술 관련해서 벌어진 세 가지 이슈는 대한민국 합기도와 유술계의 현재를 드러내고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 사건이었기에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 후 향후 전망을 밝혀 보고자 한다.


송일훈 박사의 ‘비전목록’ 거짓으로 밝혀져
(관련기사: ‘비전목록 파동’사기극으로 밝혀져)

지난 6월 무예학자 송일훈 박사는 “‘다케다 소카쿠-송전풍작-장인목-허일웅-송일훈’으로 이어지는 대동류유술 계보는 스스로 작성한 것이며, 명지대학교 허일웅 명예교수가 증서를 써주지 않은 것을 인정”하고, 자신은 대동류유술의 계승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2017년 6월 2일에는 허일웅 교수에게 더 이상 대동류를 하지 않겠다는 문자까지 보냈다.

하지만 이후 송 박사는 《세계 타임즈》에 “비전목록의 계보문서는 허일웅 교수의 지시 하에 자신이 작성했으며 2001년 3월 허일웅 교수가 자신에게 ‘대동류유술 과정 이수증서’를 수여했다”고 반박 기사를 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실 확인 결과 허위로 밝혀졌다.

이렇게 송일훈은 비전목록과 관련한 자신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역시 《세계타임즈》를 통해 창무관 관장이던 故 이성창 선생의 마지막 대동류유술 제자가 자신이며 일본의 다나카, 다케 이나기, 엔도 세이시로, 후지다가 자신의 스승이며 남종선 선생에게는 하루 8시간씩 28년을 수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나카 선생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송일훈을 기억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다. 이 땅에 대동류유술이 처음 들어오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상기시켜주는 사건이었다.

국제합기도연맹 조직체계 1국가 1조직

 

대한민국 무예 지도자들과의 면담에서 밝혀진 일본합기회의 진의

지난 2017년 6월 29일부터 4일간 명지대학교 합기도부의 허일웅 명예교수를 필두로 대한민국의 무예 지도자들이 일본을 방문하여 대동류유술과 아이키도 계승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관련기사: 한·일 아이키도(合氣道) 적통(嫡統) ‘대동류유술’ 원류(源流)에 대한 명확한 정리)

이들은 일본 명치신궁 지성관 (明治神宮 至誠館)’ 에서 아이키도를 지도하는 다나카 시게호(田中茂穗명예관장아이키도 도주 우에시바 모리테루(植芝守央), 대동류유술의 종가인 다케다 도키무네(武田時宗)의 제자 이시바시 요시히사(石橋義久)다케다 소카쿠의 4대 제자 다카세 미찌오(高瀨道雄)를 만났다.(무예신문의 기사 원문에는 ‘이시바시 기규’라고 이름이 오기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대동류 관련 인물 중 잘못된 이름을 몇 개 더 찾을 수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만남은 아이키도 도주인 우에시바 모리테루와의 환담이었다. 이 만남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다루었다고 한다.

첫 번째, 한국 합기도의 명칭문제이다.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는 한국 합기도의 명칭에 대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칭 문제는 국제적인 규칙에 근거해 ‘國際合氣道聯盟’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合氣會’도 이견이 없으며, ‘아이키도(合氣道)’라는 명칭은 일본 고유의 문화유산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한다. 이는 향후 한국 합기도와 일본 아이키도 간에 벌어질 분쟁은 국제적인 규칙에 의해 진행될 것이며 일본 측에서는 양보할 뜻이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 아이키도 조직 및 기구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도 아이키도 측은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1국가 1조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는 “한국에도 ‘일본 合氣會’에 소속된 지부가 있다”는 점도 밝혔다.

이 지부는 바로 대한합기도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아이키도와 관련한 모든 사항은 대한합기도회를 통해 처리하겠으며 대한합기도회가 국제합기도연맹의 뜻을 대변하는 조직임을 선언한 것이다. 우에시바 모리테루 도주의 이러한 입장 표명을 통해서 국제합기도연맹의 입장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한국 합기도와의 명칭 문제는 국제적인 규칙에 근거해 처리할 것이고, 대한민국 내 제반 아이키도 관련 활동은 대한합기도회를 통해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합기도연맹의 입장이 분명하게 밝혀진 것에 대해서 이에 한국 합기도 측의 대응은 제각각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합기도 명칭을 둘러싼 분쟁은 국제적인 규칙에 의거해 투명하게 전개될 것이며, 한국 내에서 그 역할을 맡는 것은 대한합기도회라는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법인신청반려처분 취소의 소 원고 승소와 향후 전망

대한민국합기도중앙협회는 7월 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라 함)에 제기한 법인신청반려처분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1심재판 판결에서 승소하였다. 이에 문체부는 2017년 7월 21일 항소장을 제출하고 정부법무공단에 이 사건의 변호를 맡기며 오는 9월 28일 첫 변론을 앞두고 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대한민국합기도중앙협회(이하 중앙협회)가 그간 국민생활체육진흥회 가맹단체로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통합 대한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가 될 수 있는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실제로 중앙협회보다 더 큰 조직과 실적을 갖춘 단체가 합기도계에는 많다. 이들이 항소심에서 대한체육회의 조사와 자료요청에 응해 자료를 보내준다면 항소심에서도 중앙협회가 과연 승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1심 재판에서는 합기도의 국제경기연맹인 국제합기도연맹이 인정하는 단체가 어디인가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1심에서는 대한체육회의 가입규정과 정책적 판단에 대한 부분만 다루었을 뿐 대표성과 유일성, 권위와 지도력에 대한 판단근거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이 커질수록 이점이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제경기연맹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내 유일한 국제합기도연맹 가맹단체는 대한합기도회이다.

향후 재판이 진행되면 국제합기도연맹은 대한합기도회를 통해서 법적 조치와 국제 소송을 진행할 확률이 높다. 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승소해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제합기도연맹과 대한합기도회의 의견을 인용할 것이다. 종국엔 지리한 합기도 명칭논란에서도 국제합기도 연맹과 대한합기도회의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이번 소송은 끝을 맺을 것이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대한민국 합기도계에서는 명칭을 변경하고 대통합을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합기도(合氣道)’ 명칭 변경이 시급하다)하지만 명칭을 바꿔 대한체육회 가맹을 시도하기엔 너무 늦고 멀리 와버렸다.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지리멸렬을 앞두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합기도계의 현실인 것이다.


대오각성하고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을 하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번 여름에 벌어진 이 세 가지 사건은 대한민국 합기도계의 현실과 미래를 제대로 드러냈다.

가짜로 비전목록을 만들어내고, 유일한 계승자라고 자처하다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단 한마디의 사과와 해명도 하지 않는 거짓이 여전히 횡행하고, 합기도 명칭 문제에 관해선 일본 아이키도 측에 일언반구의 반론과 이의도 제기할 수 없는 처지이며,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합기도 명칭을 바꾸지 않은 채 얼렁뚱땅 넘어오다가 이제는 시기를 놓쳐 멸종해 갈 수밖에 없는 공룡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백약이 무효한 현 상황에서 대한민국 합기도계가 갈 수 있는 길은 뼈를 깎고 살을 가르는 대수술을 통한 새로운 혁신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는 주체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합기도인들이 화합하고 협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저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