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아이키도’ 4.제1장 태어나(3)

제5절 아이키도와의 만남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다섯 명의 자녀 모두를 고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초등학교에 보내며 생활하는데 필사적이었습니다.

형제 모두 자신의 모든 일은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자기가 결정하고 시험을 보고 합격통지를 보여드린 다음, 입학비용을 대실 건지 상담하는 식이었습니다.

1952년 저는 히토츠바시一ツ橋 고등학교 보통과普通科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학교에서의 성적은 형과 비교되는 등 어둡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때까지 속으로 근심걱정 가득한 성격을 고등학교 입학을 기회로 삼아 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좀 더 적극적이 되자고 생각한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불독”이었습니다. 뭐를 시키면 그것만 하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그만 두지 않습니다. 한 번 물면 놓지 않으니 친구들이 ‘불독아, 불독아’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재치도 없고 요령도 없어 잘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에는 손해를 봤습니다.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다, 좀 더 밝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히토츠바시 고교에는 보통과와 기계과機械科가 있어 서로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쌍방의 상급생이 반대쪽의 1학년을 점찍어 불러내어 혼을 내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 차례가 왔습니다. 유도를 좀 하고 있더라도 상대방의 수가 많습니다. 호되게 당했습니다. 상처가 나은 다음, 이제는 제가 보스를 교문에서 기다려 덮치러 갔습니다. 물론 호되게 해주었습니다.

질리지도 않고 몇 번이고 하자 다섯 번째 정도가 되자 상대도 지쳐서 너같은 놈은 처음이다,라며 제 얼굴을 보면 도망가게 되어 상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불독의 진면목을 발휘한 겁니다.

유도는 계속 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코도칸講道館에서 순조로이 승단하여 이윽고 지방에서 수련하고 있는 사람이 승단시험을 보러 상경하면 시험장에 오르거나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체제가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지방에 살면서 유도를 수련하던 사람은 단을 받으려면 상경하여 승단시험을 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시험 상대를 저희가 했습니다. 이것이 끝나면 약간의 수고비를 받는 좋은 일거리입니다. 시험장에서 2명에서 3명 연속으로 상대를 해줍니다. 간단히 져버려도 아무 질책도 받지 않습니다. 코도칸 초단, 2단의 프라이드가 있으니까 열심히 싸우긴 하지만.

당시의 제 특기는 빗당겨치기体落し와 다리걸기足払い, 업어치기背負い投げ였습니다. 지금의 튼튼한 몸은 이 시절의 유도수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코도칸에서도 누운 기술寝技은 별로 없고, 선 기술立ち技이 중심이었습니다. 외국인도 드문 시절이었습니다.

1년에 한 번인가 두 번, 홍백전紅白試合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와는 다른 조였습니다만, 후에 도쿄올림픽 유도대표가 된 카미나가神永선수가 출장하여 한 번에 17명을 이겨, 그 자리에서 3단으로 승단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메이지明治 대학에 입학하여서 저와는 동기입니다.

선생님들은 미후네 큐조三船久蔵* 등, 유도의 역사에 남을 인물들 천지였습니다.
★ 1883~1965, 유도 10단. 159cm, 55kg의 왜소한 체격이면서도 ‘공기던지기空気投げ’ 등의 새로운 기술을 창안, 1945년 최고위 10단 명인의 칭호를 득함. ‘이론의 가노, 실기의 미후네’라 불리며, 유도 창시자인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의 이론을 실체화하는데 힘을 기울여, ‘유도의 신’으로 추앙받음.

三船久蔵十段(柔道)の神業! 空気投げ(隅落し) 球車(たまぐるま) 横分(よこわかれ) 大車【動画】

당시 저와 친구가 된 것이 단자키檀崎 군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거합도居合道 연맹 회장인 단자키 토모아키檀崎友彰* 씨로, 단자키 씨는 한때 스모선수였습니다. 예전에 현역 오오제키大関**였던 텐류天竜를 우에시바 모리헤이 큰선생이 던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이키도 본부도장을 알고 있었습니다.
★1907~2003, 스모 선수 은퇴 후 몽상신전류夢想神伝流 거합에 몰두. 거합도 범사 9단, 장도 범사 7단, 검도 교사 7단.
★★스모에서 요코즈나横綱 다음의 지위.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 그가 말했습니다.
「아이키도合気道라고 재미있는 무도가 있어. 보러 가지 않을래?」

아이키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어떤 무도일까나.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저는 흥미를 가졌습니다.

당시는 역도산力道山의 프로레슬링이 붐이었고, 나중에는 브루스 리李小龍의 때도 그랬습니다만, 남자아이들은 모두 격투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에게 이끌려 저는 도쿄 신주쿠東京新宿에 있는 본부도장을 방문했습니다. 1954년 추울 때였습니다.

당시 본부도장에는 아직 전쟁의 재앙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활감이 있고 꽁치 냄새가 맴돌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자키 군과 둘이서 방문했습니다만, 그런 저희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원기왕성한 젊은 선생의 지도 하에, 본 적이 없는 기술을 수련하고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후에 알았습니다만, 타다 히로시多田宏* 선생의 수련이었습니다.
★1929~, 아이키도 9단. 현재 생존한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의 내제자 중 가장 선배이자 최고 원로. 타다 가문은 헤키류 궁술 타케바야시파日置流弓術竹林派의 종가이기도 함.

타다 히로시 9단. 2016년 전일본연무대회에서.

둘이서 견학하자니 유도와는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라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우선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를 던진다는 전개展開가 신선했습니다. 약간 떨어진 간합間合い에서부터 공격해오는 상대의 팔을 잡아 원을 그리듯 던지는 움직임이 유도와 가라데空手 정도의 무도 밖에 알지 못하는 제게 이질감異質感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와는 달리 아이키도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하던 무도로, 일반인은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당연히 유도와 비교해 보았습니다.

‘잘도 휙휙 사람을 던지는구나. 유도에서는 저런 식으로는 안되겠지. 게다가 상대의 팔을 잡는 것도 유도와는 다르구나. 대체 어떻게 저리 쉽게 뒤집는 걸까.’ 따위를 생각했습니다.

잠깐 동안 보고 있다가 그저 묵묵히 보고 있는 것도 서먹서먹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도하고 있던 타다 선생이 말하길,
「아이키도를 본 적이 있나? 흥미가 있으면 오게.」
저와 단자키 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 이 새로이 알게 된 무도에 대한 흥미가, 차츰차츰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