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氣道 쟁점 묻고 답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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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봐요. 누차 말하지만 최용술의 제자 중에 누군가가 최용술의 무도를 合氣道라고 했고, 그것이 제자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것입니다.

 

合氣道의 한글 발음이 ‘합기도’잖아요? ‘합기도’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영문 표기는 Hapkido일 테고… 그래서 최용술의 무도가 ‘合氣道, 합기도, Hapkido’, 이렇게 잘못 알려지고 만 것입니다.


 

Q : 시작부터 꼬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무도에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A : 저도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이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용술은 왜 그런 제자들을 꾸짖지 않았는지도 궁금할 뿐입니다.

 

다만 제자들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최용술의 무도를 合氣道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최용술의 초기 제자이면서 최용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도 수발했던 김정윤(필명 장군)의 회고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때의 상황은 Hapkido 원로들끼리 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김정윤의 회고가 모두 맞다’라기 보다는 ‘아… 이런 분위기였군’ 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김정윤의 회고입니다. 최용술은 본인이 가르치는 무도를 주로 야와라(柔ら, 유술의 옛 명칭)라고 불렀다고 하죠. 어느 날 제자들이 책방에서 『合氣道』(우에시바 모리헤이 감수<監修>, 우에시바 기쇼마루 저<著>, 1957년 발행)를 구해 와 최용술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책에 있는 사진을 본 최용술이 “우에시바구나” 하며 우에시바를 알아봤고, 제자들이 “아는 사람입니까?” 하니까 최용술이 “내가 가르쳤다.”라고 했답니다.

합기도 표지 테두리

제자들은 ‘최용술이 가르쳤다는 사람(우에시바)의 무도가 合氣道면 최용술의 무도도 合氣道겠구나’라고 추리했고, 1950년대 말부터 제자들이 도장을 낼 때 合氣道라고 간판을 달기 시작했다는 줄거리에요. 최용술은 본인 무도는 合氣道가 아니라고 했지만 여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으며, 최용술은 준 적도 없는 合氣道 단(段)을 달고 다니는 관장은 물론이고, 반대로 최용술에게 본인보다는 높은 단(段)을 준 관장마저 있었다죠. 여기까지가 김정윤이 회고한 내용입니다. ‘최용술의 제자들이 『合氣道』책을 통해서 合氣道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이름을 최용술의 무도에 붙였다. 최용술은 이런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한편 지한재의 주장은 이와 달라요. 지한재는 “合氣道 이름은 1957년에 내가 지었다. 일본에 合氣道가 있는지 몰랐다. 1962년에 일본에서 들어온 책을 보고서야 일본에 合氣道라는 무도가 있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이름 지은 合氣道에서 合자를 빼 氣道라고 불렀고, 1963년에 법인체를 설립할 때 법인 이름도 ‘대한기도회(大韓氣道會, 이하 기도회)’라고 했다. 하지만 후배가 기도회에서 나보다 높은 직책을 맡은 것에 마음이 상해서 각자 갈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나는 다시 合氣道라고 불렀다.” 지한재의 주장은 ‘合氣道 이름은 나(지한재)의 창작이다. 본래 合氣道(Aikido)가 있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걸 알고 내가 만든 이름 合氣道를 氣道로 바꿨다. 그랬다가 氣道에서 다시 合氣道로 바꿨다.’로 요약할 수 있겠군요.

 

최용술의 무도를 合氣道로 명명하기까지 전체적인 정황은 두 사람의 말이 다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Hapkido계 원로들은 일본 무도 合氣道를 알고 있었다.’입니다. 그 사실을 알면서 최용술의 무도에 合氣道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잘못이고, 나중에 알았는데 바로잡지 않은 것도 잘못이죠.*

* 1963년에 ‘최용술의 무도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취지에서 최용술 측(제자 김정윤 등)이 주도해 기도회를 만들기는 했다. 당시에 이미 도장을 중심으로 Hapkido라는 이름이 퍼지고, Hapkido 단체도 생기기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만연하지는 않았다. 결과론이지만 기도회 설립은 어쩌면 최용술의 무도 명칭이 Hapkido로 잘못 알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력한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도회가 설립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초대 총재 최용술이 해임된다.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가 주도해 최용술을 조직에서 축출한 것이다. 최용술은 氣道라는 이름(유명 작명가 백운학이 최용술에게 지어준 이름인데, 기도회 설립을 추진한 사람들은 최용술의 무도에 이름이 없으니 일단 氣道로 법인을 설립한 다음, 나중에 명칭을 변경하기로 합의했다고 함)은 물론이고 단체에도 미련이 없었기 때문에 기도회에서 등을 돌렸다. 이후 기도회는 최용술과 아무런 상관없는 조직이 되었고,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 송사에 휘말린다.

한편, 기도회 설립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도 김정윤과 지한재의 입장이 맞선다. 위에 언급한 지한재의 발언은 2010년 무카스 인터뷰에 수록돼 있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지한재가 기도회 설립을 주도한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다른 Hapkido史 자료를 종합하면 상황이 이렇게 정리된다. 1962년 여름, 지한재가 서울에서 최용술을 배제한 채 법인을 설립하려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대구에 있던 최용술 측(김정윤 등)이 감지했다. 김정윤 등이 빠르게 대응해 1963년에 기도회를 설립했다. 당시 군사정부는 한 계통에서 두 개의 법인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고 하니, 지한재의 움직임이 기도회 설립을 앞당긴 셈이다. 이처럼 최용술 측에서 기도회를 설립하는 바람에 최용술을 빼고 법인체를 만들려던 지한재의 의도가 무산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Q : 그러면 최용술이 “내가 우에시바를 가르쳤다.”고 했다던 말은 무슨 뜻입니까? 최용술이 한 그 말 때문에 제자들이 ‘合氣道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덜 하게 된 것 같은데요.

 

A : 문제가 많은 발언입니다. 최용술의 생전 인터뷰, 제자들의 회고는 이래요. “최용술은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다케다에게 입양됐다. 다케다의 직계 제자였다. 다케다의 지도를 받으며 7년* 동안 혹독한 산중(山中) 수련을 했다. 다케다를 대신해서 수제자 최용술이 우에시바를 지도했다. 우에시바를 다케다에게 처음 소개한 것도 요시다 코타로가 아니라 최용술(최용술의 일본 이름은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였다. 다케다는 대동류유술을 최용술에게 물려주었다.” 최용술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 8년이라는 Hapkido계 기록도 있음


 

Q : ‘최용술과 다케다의 관계’가 여기서 나오네요.

 

A : 결론만 짧게 말하겠습니다. 근거 희박.

최용술이 다케다의 양자 혹은 수제자였다는 것도, 다케다에게 우에시바를 소개했으며 우에시바를 지도했다는 것도, 다케다로부터 대동류유술을 물려받았다는 것까지 모두 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