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활인심방과 아이키도 정신

퇴계 이황 선생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성리학자입니다. 그가 설파한 주리론은 조선 성리학의 대들보를 이루었기에 고등학교 국사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고 있으며, 학계에서는 ‘퇴계학’이라는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퇴계학은 한국의 사상은 물론,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 사상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인들, 나아가 일본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값진 정신적 가르침을 설파한 퇴계의 모습은, 1천원권 지폐의 도안을 장식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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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초상화. 이 초상화는 퇴계가 마르고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음을 보여 줍니다. 출처: 서울신문

그런데 퇴계가 철학이나 정치사상 분야 뿐만 아니라 체육학계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퇴계의 이미지와 체육이라는 단어가 쉽게 연결되지 않을런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남긴 『활인심방(活人心方)』이라는 저서는 오늘날 체육계에서도 중요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아이키도의 정신과도 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퇴계의 저서가 어떤 점에서 아이키도와도 통하는 정신을 갖고 있을까요?

 

사실 퇴계는 강골은 커녕 신체가 약한 인물이었습니다. 당장 지갑에서 천원, 오천원, 만원권 지폐를 꺼내어 퇴계의 모습을 율곡, 세종대왕과 비교해 본다면, 퇴계는 어깨가 좁고 몸이 마른, 한눈에 보더라도 건장하거나 강인해 보이는 풍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지나치게 열중하다 보니, 그러지 않아도 병약했던 몸이 더욱 약해졌던 듯 합니다.

실제로 퇴계는 본인이 20세 무렵 주역 공부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쳤음을 스스로 밝히면서, 후학들에게 지나치게 학업에 몰입하여 건강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 것을 당부한 적도 있습니다(주동진·김한철, 2013). 그러다 보니 건강문제는 평생동안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34세에 문과(대과)에 급제한 퇴계가 여러 차례에 걸쳐 낙향한 까닭은 학문 그 자체를 좋아한 그의 천성 및 여러 차례 사화가 벌어지던 어지러운 정국에 기인하는 바가 크기는 했지만, 건강 문제도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줄 정도였으니까요(주동진·김한철, 2013).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퇴계 선생은 마치 병약하여 요절한 천재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약관 나이에 건강을 잃었던’, 그래서 관직에서조차 누차 물러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퇴계는 우리 나이로 칠순까지 살 정도로 장수를 누렸습니다. 요즘에야 70세 정도는 노인이라고 하지도 않는다지만, 당시는 조선시대였고 70세면 ‘고희(古稀)’, 즉 예로부터 보기 드물다고 여겨질 정도의 장수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만년은 온갖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았던 만년이 아니라, 청량산을 벗삼아 도산서원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했던 굉장히 행복하면서도 본받을 만한 노년이었습니다. 분명 젊은 시절부터 건강을 잃었고 관직 생활에 지장까지 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던 퇴계가 어떻게 그토록 장수, 그것도 건강하고 행복한 장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오늘 소개할 그의 저서 『활인심방』은, 퇴계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을 담은 책입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퇴계는 건강을 돌보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과오를 반성하고 자신과 후학들의 건강관리 지침서를 저술하게 됩니다(김성일, 2014). 이 책이 바로 활인심방입니다.

활인심방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일상 생활에서의 심신수련을 30가지 항목으로 정리한 「중화탕(中和湯)」, 심신이 어지러워졌을 때 이를 바로잡는 수양법을 정리한 「화기환(和氣丸)」, 그리고 ‘도인((導引法)’이라 불리는 체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이외에 보양음식, 사계양성가((四季養生歌-노래를 통한 일종의 음악 치료) 등의 내용도 있지만, 아이키도를 주제로 한 이 글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에 여기서는 일단 생략합니다.

퇴계는 이 책에 설파한 것처럼 심신수양과 신체활동을 통해서 건강을 단련했고, 후학들에게도 이러한 건강관리를 실천할 것을 당부합니다. 이 같은 활인심방의 건강철학은 단순히 육체 단련을 통한 강건함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심신의 조화로운 수양과 수련을 통한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체육학계에서도 크게 조명하고 있습니다(김종철,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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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심방』 원문의 한 부분. 출처: 경상매일신문

지금까지 소개한 활인심방, 그리고 퇴계의 건강관을 읽으면서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으셨는가요? 저는 아이키도 수련을 하며 늘상 듣는 ‘기검체일치’, ‘시합이 없는(싸우지 않는, 이기고 짐을 구분하지 않는)’, 그리고 ‘화(和)의 아이키도)’라는 단어들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아이키도는 분명 무술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부를 가리는 대신 배려와 화합, 심신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표어나 슬로건을 넘어, 무술 동작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아이키도만의 차별화되는 정체성이자 의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방과 승부를 가리는 대신 심신의 건강,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통한 조화를 가리는 아이키도의 정신, 이것은 바로 심신의 조화를 통한 건강과 행복을 추구했던 활인심방의 정신과도 상통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건강을 챙기지 못했던 젊은 날에 대한 퇴계 선생의 반성이, 군국주의 일본에 대한 반성에서 아이키도를 창시한 도주 선생님의 정신과도 상통하기에 아이키도와 활인심방은 적지않은 시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상통하는 모습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체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전인(全人)을 기르는 것입니다. 엄청난 기록을 세울 수 있거나 상대방을 보기좋게 꺾어 버리는 초인이나 인간병기가 아닌,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통해서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인간상을 기르는 것이 바로 체육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기에 체육학계에서는 입시위주 교육과 업무, 각종 스마트 기기에 빠져 나약해진 인간상과 스포츠 세계의 경쟁에서 승리하는데만 몰두하는 인간상을 모두 경계하고, 심신이 하나가 되어 성장, 발전해 가는 인간을 기르는 것을 바람직한 모델로 추구하고 있습니다(김종철, 2013).

퇴계의 활인심방이 체육계에서 주목받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김성일, 2014; 김종철, 2013). 아이키도의 정신, 진정한 가치도 바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를 이기고 꺾기 위한 ‘굳셈(武)’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과 육체를 강건(武)하게 하기 위한 무술, 그것이 바로 아이키도가 가진 진정한 가치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감히 피력해 봅니다.

 

퇴계 이황 선생은 젊은날 건강을 잃어버린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활인심방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건강한 만년을 보내며 장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의 삶이라지만, 아이키도 수련을 통해서 힘든 현대사회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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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활인심방 체조 재현행사. 활인심방의 진정한 의미는 체조 그 자체보다는, 심신의 합일과 건강을 추구했던 그 정신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진 출처: 경북매일

 

참고문헌

김성일, 2014, “活人心方에서 찾아본 退溪의 건강교육과 사상,” 민족문화논총, 56, 211-230.

김종철, 2013, “심신양생(心身養生), 심신 단련(心身鍛鍊)의 전인적(全人的) 체육교육 사상(體育敎育 思想) 연구,” 한국체육교육학회지, 18(2), 25-33.

주동진·김한철, 2013, “『活人心方』에서 살펴본 퇴계의 건강(養生)론,” 퇴계학논집, 13, 251-273.

 

 

이동민
대구교육대학교 졸업(2003)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교육학박사, 2014) 전) 대구교육대학교 박사후연구원 현)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초빙교수 한국교원대, 서울교대, 서울대, 공주대, 전남대 등 출강 한국문인협회 정회원 한국번역가협회 정회원 주요 저역서: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역서, 2013, 논형)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 (공역, 2014, 푸른길) 『지리의 모든 것』 (역서, 2015, 푸른길) 주요 연구업적: How to design and present texts to cultivate balanced regional images in geography (Journal of Geography, 2013) Mindful learning in geography: Cultivating balanced attitudes toward regions (Journal of Geography, 2015) E-mai: dr.dongmi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