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방 도장 탐방기-안산도장을 가다

연재를 시작하며기획의 변

이 졸고를 쓰는 필자로 말하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부터 시작해 중학교 때 한국 유사합기도, 대학 진학 이후로는 복싱, 18기, 킥복싱, 피트니스, 에어로빅, 스피닝, 수영, 배드민턴, 국궁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해볼 수 있는 운동은 거의 다 섭렵한 몸이다. (그간 운동에 쓴 돈만 합쳐도 중형 자가용 한 대 값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1년 이상 제대로 한 운동이 하나도 없어서 결국 운동과는 담 쌓고, 초등학생 애가 둘은 있는 듯한 중년 남성의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는 40살이 되던 해,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정통 합기도를 시작한 지 이제 만 2년. 역시나 쉽지는 않은 길이어서 1년에 한 번도 잘 안 나오는 7급 심사 탈락이라든지, 디스크 재발이라든지 중간에 운동을 포기할 뻔한 몇 번의 고비가 있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초심자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4급까지 왔다. 물론 “합기도 2년 하면 권혁신만큼은 한다”라든지 “권혁신이 할 수 있는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4급인데 그것도 못하냐?”라는 평판을 들으며 운동 신경 제로, 눈썰미 제로, 집중력 제로, 암기력 제로의 자질로도 정통 합기도를 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 보여 수많은 초급자들에게 희망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다.

또한 필자는 1976년 서울 서대문구 홍은 고가도로(이제는 철거됐음) 옆 모 공동주택에서 태어나, 만으로 40년이 넘는 올해까지 서울 밖에서 한 달 이상 거주해 본 적이 없는, 말 그대로 서울 강북(정확히는 강서북) 촌놈이자 집돌이로, 평생을 이렇게 살다 죽지 않을까 싶은, 매우 시시한 인생을 살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둔한 합기도 초심자에 비전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노총각 한량인 필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아직 전후방 수신도 제대로 못하는 필자지만 그나마 할 줄 아는 게 어줍지 않은 글이나마 조금 긁적이는 것이기에 황송하게도 합기도 신문에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다는 윤대현 도장장님의 명을 받아 합기도신문 기자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저간 여러 강습회와 송년회 등의 모임을 통해 지방에서 오시는 여러 관장님들과 회원 분들을 뵙다 보니 저 분들은 어디서 오시는 것이고, 어떻게 수련하고 있으며, 거기엔 어떤 볼거리가 있고, 어떤 맛있는 것이 있을까? 궁금증을 품게 됐다. 이는 순전히 필자가 40 넘은 백수한량으로서 오로지 시간만 남아돌아서…인 것은 아니고…합기도신문의 거의 모든 국내 기사가 본부 도장 중심이다 보니 지방 회원분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 그리고 지방 도장에 대한 홍보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기획한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물론 필자 개인으로선 서울 밖 구경도 하고, 다른 관장님들께 합기도도 배우고, 도장 근처 맛집도 가고, 기회가 되면 지역 특산주도 한 잔하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석사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 야무진 꿈을 꾸고 있는데… 과연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만.

어쨌든 이렇게 시작하게 된 “나의 지방 도장 탐방기”! 과연 몇 회나 연재될지는 알 수 없으나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써보겠노라~!

 

 

첫 번째 탐방지, 안산도장을 가다

이 기획을 윤대현 선생님께 말씀드린 건 지난 연말의 일로, 새해 1월부터 취재를 하려고 했으나 연락을 했던 두 군데 도장의 취재가 무산되면서 설 연휴를 지나 2월 초 첫 취재를 하게 됐다.

그리하여 설 연휴 다음 날인 1월 31일 화요일 안산도장의 관장이시자 대한합기도회 이사를 맡고 계신 윤낙준 도장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나 친절하고도 살갑게 반겨주신다. 안산도장은 월, 수, 금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 수련이 있고, 일요일도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수련이 있는데, 이번 주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다음 주 승급 심사를 앞두고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하신다. 수요일은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불금 저녁을 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을 매우 후회한다.) 금요일 5시 수련을 마치고 단벌 도복을 주섬주섬 챙겨 가방에 넣고 도장을 나서려고 하니 아리따운 여성 회원분께서 말씀하시길 “연습 안 하고 어디 가요?”라고 묻는다. 이번 2월에 3급 승급 심사를 볼까 말까 고민하는 필자. 아직 심사 기술이 무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지만… 승급 심사는 다음 주에 연습해도 되지 취재가 우선 아닌가! 취재를 핑계로 연습을 젖히고 신촌 지하철역으로 몸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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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잔역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안산도장.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732-2 광덕1로 64 5층

 

그런데 여기서 갈등이 생긴다. 신촌역에서 안산도장이 있는 고잔역으로 가려고 하면 시청 방향 노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4호선을 타는 방법과 정반대인 합정 방향 노선을 타서 신도림에서 1호선을 타고, 다시 금정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는 방법이 있다. 조금 돌아서 가면 편하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길(물론 하행하는 4호선이라고 사람이 적으란 법은 없다)과 나름 최단 시간이라고는 하나 2번의 환승에 대한민국 지하철역 중 최고로 혼잡한 신도림역을 퇴근 시간, 그것도 불금에 가는 길. 어리석게도 필자는 두 번의 실수를 저질렀으니 시청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아니다 싶어 비상 버튼을 누르고 다시 나와서 합정 방향으로 탄 것. 아니나 다를까 빈 좌석이 널려 있는 시청 방향과 달리 합정 방향은 열차가 꽉 차서 탈 수가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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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닫혀버린 2호선 열차

 

결국 열차 하나를 떠나보내고 5분이나 기다려 다음 열차를 탔는데 이 역시 만원 열차! 더욱이 환장하겠는 것은 사람들이 계속 억지로 올라타는 바람에 문에 옷이 끼어서 몇 번이나 문을 여닫느라고 계속 연착이 되었다는 것. 결국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게 1호선에서 4호선으로 환승하는 금정역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가보는 금정역. 이 역은 재미있게도 4호선과 1호선이 한 플랫폼에서 교차한다. 그러니까 오이도 방향 4호선을 타려면 별도의 환승 통로를 거칠 필요 없이 1호선 수원행 열차를 내려서 바로 맞은편에 오는 오이도행 열차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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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과 4호선이 동거하는 금정역의 플랫폼

 

아마도 서울 지하철 중에선 유일하지 않나 싶은데(대한민국에서도) 어쨌든 강북 촌놈답게 난생처음 보는 환승 구조에 당황해서 반대편 플랫폼까지 갔다 오면서 시간을 더 허비했다. 결국 신촌역에서 1시간 40분가량 걸려서야 고잔역에 도착했다.

 

안산세월호윤낙준 도장장님과의 인터뷰

개인적으로 고잔역에는 모두 3번 와 봤다. 한 번은 고잔역에 있는 와스타디움에 축구 올림픽 예선(언젠지 기억이 안 남)을 보러 처음 왔고, 두 번째는 아는 작가 분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이 역시 언젠지 기억 안 남) 고대안산병원 장례식장에 왔고, 세 번째는 2014년 연말 세월호 분향소에 조문하고 유가족분들을 뵈러 왔다. 그리고 네 번째 이번엔 안산도장을 방문하러 온 것이다. 참고로 안산 단원고는 고잔역 바로 옆에 있다. 고잔역 2번 출구 옆 도로에서 기다리시던 도장장님께 이 말씀을 드리자, 안산도장 회원 중에도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면서, 합기도 수련이라는 접점을 통해 서로에게 의미 있는 관계와 존재로서 슬픔을 나누고 힘이 되고 있다고 하신다.

고잔역에서 차를 탄 우리는 도장 부근 동태탕집에 갔다. 미리 도장장님께 부탁드려 물색해 놓은 맛집. 평소에 좋아하던 동태 내장 2인분을 시켜 놓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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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대로 양푼 가득 나오는 동태탕

 

윤낙준 도장장님은 안산이 고향이고, 2002년 안산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결혼 후 갑자기 살이 찌자 운동을 알아보다가 유도 도장에 전화를 했는데 너무 불친절한 태도에 관심을 끊고 우연히 합기도장 간판을 보고서 들어간 게 합기도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때 도장을 운영하던 관장님이 남민우 관장님으로 그 밑에서 8년을 배우다가 일신상의 사정으로 남민우 관장님이 도장 운영을 접으시면서 함께 운동하던 분들과 합기도 클럽을 만든 것이 2010년. 그때부터 지금 도장의 바로 옆에 있는 해동검도 도장을 빌려서 수련을 하다가 2015년 해동검도 바로 옆에 지금의 도장 자리가 나면서 정식으로 도장을 열었다.

사실 윤낙준 도장장님은 국내 업계 1위의 중견 기업에 다니다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강연을 전문적으로 해 보고 싶어 몇 해 전에 과감히 퇴직을 하였다. 그러나 퇴직 후 시작한 강연 일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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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직장의 점퍼를 입고 나오신 윤낙준 도장장님의 푸근한 미소.

 

“회사를 관두고 나면 1년 정도는 힘이 넘쳐 못할 일이 없을 거 같잖아요. 그러다 현실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가장 힘든 게 주변에 그 많던 사람들이 없어지는 거죠.”

그렇게 관계가 사리지고 힘들 때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지도자라는 위치에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의 의미와 존재감을 느끼고 그것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퇴직 후 정신적으로 힘들 때 윤대현 선생님을 자주 찾아뵀어요. 만약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제 삶이 많이 팍팍했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잖아요. 그 말씀들을 통해 다시 힘을 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예전에는 잘 안 들리던 것들이 삶이 힘들어지면서 들리는 거죠. 이전엔 잔소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떨 때는 선생님이 아버지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우리가 아버지께 많이 듣는 얘기잖아요. 도장은 잘 되냐, 사업은 괜찮냐. 그런 걱정하시는 말씀들이요. 저를 아들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예전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어요.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수련생이 더 많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중도에 그만두는 회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어요. 회원들이 많이 활기차졌고요. 지금은 도장 운영이 회비로도 충분히 가능해요. 임대료, 관리비 등 이것저것 다 빼고도 회원들과 단체 회식을 할 수 있을 정도예요. 이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예전에 직장 다닐 땐 나름 월급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적자를 메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회비만으로도 충분한 거죠. 이게 마케팅이나 홍보가 아니라 분위기에 의해서 중도 포기가 줄어든 거니까 더 뿌듯한 거죠. 그리고 큰 자랑은 아니지만 전국연무대회에서 안산도장 회원 참석자 수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걸요? 이렇게 많이 가는 게 안산도장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국연무대회에 참석한 이래로 참석자가 줄어든 적이 없어요. 매년 도장이 성장해온 거죠. 단순히 외형뿐 아니라 회원들의 실력도 많이 올라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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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을 가득 메운 채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안산도장 수련생들

 

대한합기도회 이사직을 맡게 된 것도 이렇게 안산도장을 클럽 때부터 꾸준히 잘 유지하고, 회원들도 조금씩 늘리고, 위기도 잘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선생님께 신뢰를 얻어서일 것 같다고 하신다.

“협회 이사직을 맡기 전에는 몰랐는데 맡고 보니 선생님이 참 힘드셨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나 답답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니까요.”

필자도 옆에서 대한합기도회와 유사합기도 단체와의 분쟁이나 유사합기도 측의 황당한 주장을 접할 때면 화가 치미는데 두 분은 오죽할까.

“그러면서 이전에는 도장에만 신경 썼는데 이제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상황을 판단하게 된 거죠. 선생님께서도 예전보다 더 많이 이사들의 의견을 물어보시고요.”

지금 현재 윤낙준 도장장님은 굿컴퍼스라는 강연 전문 에이전시를 운영 중이시다. 강연이 필요한 단체와 강연자를 연결해 주는 일이다. 본부도장에서 초급자반을 지도하며 영어강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민호 지도원도 함께 일한다 한다. 이렇게 사업과 합기도 도장 운영에 이사 일까지 하시다 보면 가정에 소홀할 수 있지 않을까? 사모님께서 섭섭해하지는 않으신지 궁금했다.

“처음 한두 해에는 금방 관두겠지, 얼마나 가겠어?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가장 든든한 지원자예요. 요즘은 오히려 더 챙겨요. 나중에 근사한 도장을 만들어서 마당에 정원도 두자는 말까지 할 정도예요. 중학교 2학년인 아들도 관심을 보이고요. 지금은 학업에 열중해야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제대로 가르쳐 볼 생각이에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제주도 김시연 회원이 합기도뉴스에 쓰신 “노후 준비요? 합기도로 합니다”란 글이 떠올랐다. 그 말씀을 드렸더니 “노후가 힘들다는 말은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어쩌면 소통이 단절되고, 인간관계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합기도는 아주 좋은 역할이 될 수 있거든요. 우리 도장에도 50 넘은 회원분들이 오시는데, 그분들 말씀이 ‘이 좋은 걸 왜 이리 늦게 알았을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정말 신난다’라고들 말씀하세요.”라고 답하신다.

현재 페이스북에 개설된 합기도 안산도장 페이지(https://www.facebook.com/aikidoansan/)에는 다양한 합기도 연무 영상과 대중문화 콘텐츠 속 합기도 영상 등이 올라와 있다. 윤낙준 도장장님께서는 그 클립 속 국제대회에 자주 다녀오시곤 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선생님을 모시고 일본에 다녀오려고 해요. 가서 일본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이지만 아이키도를 하러 온 세계인들을 만나는 거죠. 사실 우리는 일본 무술이기 때문에 심리적인 벽이 있잖아요. 그런데 서양인들은 그런 거부감이 없다 보니까 순수하게 무술로만 대하는 거죠. 더 진지하게 배우려고 하고요. 제가 국제대회에 처음 간 게 전일본연무대회였는데, 그 넓은 무도관이 꽉 차 있는 거예요. 대학교 단체 연무 등이 있는 초반엔 조금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조용해지더니 8단, 9단 이런 분들과 도주의 연무가 이어지자 완전히 진공상태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런 모습이 정말 부럽더라고요. 하나의 무도로써 존중하고 집중하는 분위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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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다카사키 시에서 열린 제12회 국제합기도대회에 참석한 도장장님과 수련생들

 

이때쯤 나온 동태찌개 속 생선과 내장을 거의 다 건져먹은 나에게 도장장님께서 여기는 본인이 사시겠다고 한다. 이거 꼭 얻어먹으러 온 거 같잖아. 하하하.

식사 후 밖으로 나와서 우문을 던져봤다.

“혹시 좋아하시는 기술이나 잘하는 기술 그런 게 따로 있을까요?”

“합기도는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라가는 거지 따로 그런 건 없어요. 물론 검술을 좀 더 잘하거나 체술을 좀 더 잘하거나 그럴 순 있죠.”

역시나…우문엔 현답이…질문자가 검술도 체술도 못하니 우문을 던질 수밖에…

여기서 가장 어려운 질문, 그래서 묻기 힘든 질문을 던졌다.

“이거 참, 여쭤보기 좀 그런데… 쑥스럽기도 하고… 아이키도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 그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대답은 몇 분 후 도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을 수 있었다.

“아이키도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한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나아진다는 것에 끝이 없으니 끊임없이 배워가는 과정인 셈이죠. 내가 수련생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워요.”

그렇다. 맞는 말씀이다. 선생님 이하 지도원분들에게 가장 많이 배우지만 나와 우케를 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만만치 않게 많다. 2년 동안 느낀 점은 유단자 이상이면 본인만의 운동철학이랄까 기술을 시전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가 잘하면 잘하는 데에서 배우고, 못하면 그 못하는 데에서 왜 안 되는지 배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중 나의 스승이 있다”라고 하셨는데, 합기도는 두 사람만 있어도 서로 스승이 되어 줄 수 있다. 물론 나처럼 대책 없는 초심자 둘이라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만…

 

안산도장의 수련

도장에 도착하니 도장장님 말씀대로 바로 이웃에 해동검도 도장이 있었다. 아이키도 도장을 차릴 때 반발을 두려워했는데 다행히도 해동검도는 초등학생 위주라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 양해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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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해동검도 도장. 도장 개관 전에 동호회 시절에 대관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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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입구. 단출하고도 깔끔한 디자인이 고졸하다.

 

개관한 지 2년이 된 도장인지라 깔끔하고 화사한 분위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미 몸을 풀고 있던 안산도장 회원들 몇 명은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도장장님과 함께 도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가지만 수련에는 참여하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행여 무늬만 4급인 실력이 들통 날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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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도장 비치 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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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에 비치된 다양한 도서들. 아이키도 전문 서적뿐 아니라 교양인문서, 만화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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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전원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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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영역을 표시하는 문(門)인 도리이(鳥居, とりい)를 본 따 만든 상좌

 

수련은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도장장님께서는 직접 강사로 뛰시는 만큼 부드럽고 친절한 어조로 기술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고 본부 도장에서와는 약간 다른 지도에 아 그렇구나. 감탄하며 머릿속에 입력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과연 치매 초기 증상이라 돌아서면 까먹는데 기억이나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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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서 한손잡기 이교를 시연 중인 도장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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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서 한손잡기 이교 고착기를 연습 중인 수련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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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서한손잡기 사방던지기를 시연하는 도장장님. 완전히 돌아서서 상대방이 손이 꺾였는지 확인하라고 강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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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 보이지만 매우매우 어려운 기술인 중심잡기를 시연 중이신 도장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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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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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련의 마지막 순서인 좌기 호흡법 시범

 

수련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도장장님께서는 그날 배웠던 기술들을 하나하나 상기해주시며 주의해야 할 점도 가르쳐주셨다. 말하자면 요점 정리라고 할까. 그리고 다음 주 심사를 앞두고 회원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점이 하나 있을 때는 막막하지만, 또 하나의 점이 생기면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져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는 거죠. 기술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경쟁하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자신을 극복해내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오승(吾勝)이라고 하잖아요. 항상 기본을 튼튼하게 하면서 큰 줄기는 한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후 회원들은 심사에 대비해 자유롭게 연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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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아와세 1번을 지도 중인 도장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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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까지 수련에 여념이 없는 안산 회원들

 

도장장님께서는 집이 멀고 먼 필자를 위해 유단자 한 사람에게 부탁을 해주셨고 그분의 차를 타고 고잔역에 내려 집으로 왔다. 막차에 막차를 이어 타고 돌아온 집. 도착해 보니 12시 53분이었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일찍 오려고 4호선→1호선→2호선→6호선 노선을 3번이나 갈아타는 꼼수를 써봤으나 결과는 4호선→6호선으로 1번 갈아타는 것과 똑같은 시간인 한 시간 50분 이상 걸려 도착하고 말았다. 역시나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집으로 간다는 방향이 중요할 뿐. 점(환승역)은 중요하지 않았다.

 

취재 후기

전국의 합기도도장을 전부 돌아보리라!라는 야심 찬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준비 부족과 시간 부족, 능력 부족이 드러난 첫 취재였다. 애초 계획은 단순히 도장만 탐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관광 자원도 소개하고, 수련에 참여해서 손목도 꺾여 보고, 수련 후엔 지역의 특산물을 안주로 그 지역만의 막걸리와 소주를 한 잔 하며 도장장님의 취중진담도 밤새 들어보자!라는 기획이었으나 일정상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첫 취재에 수도권이라 거기가 거기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게 문제였던 듯하다. 사실 서울 주변의 신도시들은 대개 비슷한 풍경이긴 하다. 지하철 역 주변으로 형성된 번화가와 늘어선 아파트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이고 고잔역 주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고잔역에서 조금만 더 가면 안산호수공원이 있고 신길온천이 있고 소래포구가 있다. 안산도 1박 2일 이상의 일정으로 돌아볼 곳이 참 많은데 너무 안이하게 접근한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해본다. 다음 탐방 때는 반드시 많이 가고,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오리라!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