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kido 지도자님, 헷갈리지 않으세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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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훈제된 청어로 주위를 돌리는 오류

 

‘훈제된 청어로 주위를 돌리는 오류’란 ‘실제로 논증하고자 하는 문제에서 지엽적인 문제로 관심을 돌리게끔 조작하여 논증에서 불리한 부분을 숨기려고 시도하는데서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보통 ‘훈제된 청어의 오류’라고 부른다. 왜 오류 이름에 ‘훈제된 청어’’라는 것이 들어갔을까? ‘훈제된 청어(red herring)’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예전에 서양에서는 사냥꾼들이 자신의 사냥개를 훈련하기 위하여 훈제된 청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훈제된 청어는 그 냄새가 무척 강하고 독특해서 사냥개들이 이 훈제 청어의 냄새를 맡게 되면 다른 냄새는 맡을 수 없게 되어 딴 냄새에 호기심을 가질 수 없고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개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이 훈제된 청어를 끌고 다니면서 냄새를 풍겼고, 이 냄새를 가지고 주의가 산만했던 개들을 사냥꾼이 원하는 냄새를 맡게끔 점차 적응하게 훈련했던 것이다.

 

이것 외에도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양에서 도둑이 집을 털기 위해 훈제된 청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도둑이 도둑질을 하기 위해서 집을 지키는 개의 주위를 피해야 했는데, 이때 바로 개의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훈제 청어를 개에게 던졌다는 데서 이 이름이 전해졌다고 한다. 물론 이 훈제된 청어의 냄새가 강하기 때문에 이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바로 두 번째 이야기가 이 오류를 단번에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훈제된 청어로 주위를 돌리는 오류’는 사냥꾼들이나 도둑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에게 다른 근거들을 제시하여 주위를 산만하게 만들어, 원래 하고자 했던 주장이 아닌 다른 주장을 결론으로 지지하게끔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오류는 어떤 결론을 지지하기 위해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근거들이 다른 결론을 지지하는 근거들로 잘못 제시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이 오류를 ‘논점일탈의 오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문>

어떤 사람이 졸음운전을 하여 길을 건너던 노인을 치어 다치게 했습니다. 다친 노인의 가족이 그 운전자를 고소하여 재판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해자의 변호인은 다음과 같이 변론합니다. “피고인은 졸음운전을 하여 한 노인을 다치게 하였습니다. 피고인의 경우처럼 졸음운전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말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졸음운전은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졸음운전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정부에서는 이 문제에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풀이>

지금 이 재판은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운전자의 잘못이나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는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변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을 이끌기 위해서 논점을 흩뜨려 놓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변호사가 떠들고 있는 말은 졸음운전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끌고 간다.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의 처벌과는 상관없는 주장임은 말할 것도 없다.

 

* 이상 『논리 속의 오류 오류 속의 논리』(정재환·신소혜, 한국회국어대학교 출판부, 2012) 中 ’48. 훈제된 청어로 주위를 돌리는 오류’에서 인용

 

 

다음은 Hapkido 관련 서적, 칼럼, 논문, SNS 게시물의 내용을 재구성한 글이다.

 

Hapkido는 일본에서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을 배웠던 최용술(장인목을 포함하기도 함)과 그 제자들의 노력으로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우리나라 고유의 무도입니다. Hapkido는 일본 무도 대동류합기유술에 뿌리를 두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양한 기술을 접목하면서 한국화(韓國化) 되었으며, 세계 각국에 진출해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일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Hapkido(合氣道) 이전에는 합기유권술(合氣柔拳術), 기도(氣道) 등의 이름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명칭 Hapkido와 같은 한자어 이름 合氣道를 사용하는 Aikido측에서 ‘合氣道는 일본 무도’라면서 우리(Hapkido)에게 合氣道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심지어 과거에 Hapkido를 하다가 지금은 이름을 바꾸어 다른 무도를 하는 국내 무도인들도 Aikido 단체의 주장에 동조해 우리(Hapkido)를 공격합니다. 부당합니다.

Hapkido와 Aikido는 한자어 이름은 같지만 서로 다른 무도입니다. 창시자가 다르고 기술도 다릅니다. 한자 이름은 같아도 발음과 영문 표기가 다르기 때문에 혼동할 일도 없지 않습니까. 合氣道는 본래 일본 무도이므로 한국의 Hapkido는 合氣道를 이름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Hapkido의 정체성을 흔드는 행위이며, 지난 70여 년 동안 Hapkido의 발전을 위해 공들인 지도자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여러분, 부디 우리나라 고유의 무도 Hapkido(合氣道)를 지켜 주세요!

 

나는 이 글을 Hapkido 지도자들의 집단의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그 집단의식이 ‘훈제된 청어로 주위를 돌리는 오류’에 빠져 있다고 이해한다. 무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보통 사람들이 이런 호소를 접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나라 고유의 무도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고, 엄연한 우리 무도의 이름을 바꾸라고 하는 Aikido 단체와 국내 다른 무도인들을 향해서는 화가 날 것이다. Hapkido 지도자들은 잘못된 무명(武名)을 바로잡자고 하는 것을 마치 무도사(武道史)나 문화를 침탈하는 행위인 것처럼 변질시켰다. 그래서 Hapkido 개명 요구의 앞으로는 Hapkido의 역사를 거론하고, 뒤로는 우리 고유의 무도를 지켜 달라는 호소를 하는 것이다.

 

앞서 Hapkido계의 원로들이 일본에 合氣道가 있는 것을 알고도 최용술의 무도에 合氣道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명칭의 혼란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Hapkido 지도자들이 Hapkido의 정체성을 세우려면 (고의이건 실수이건) 이미 존재하던 다른 무도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던 실책을 인정하고 여기서부터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지금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기원이 대동류합기유술인가’, ‘지금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린 최용술은 정말로 일본에서 다케다 소오가쿠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웠는가’, ‘지금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예전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기술은 같은 한자어 이름을 가진 Aikido와 어떻게 다른가’, ‘지금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는 국내외에 얼마나 널리 전파되었는가’를 묻고 여기에 답하는 것이 바로 ‘훈제된 청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Hapkido가 대동류합기유술에서 비롯되었고, 최용술이 처음 국내에 알렸고, 예전 이름은 무엇이었고, Aikido와는 어떻게 다르고, 얼마나 유명한가’를 말하는 Hapkido 자료를 읽을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와 대동류합기유술-최용술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기술이 Aikido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것이,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예전 이름을 열거하는 것이,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를 세계 몇 개국에서 몇 명의 인구가 수련하는가를 자랑하는 것이 ‘合氣道가 아닌데 合氣道라고 이름을 붙여 Hapkido라고 부르고 있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훈제된 청어’에 홀리지 말자.

 

 


여담이다.

Hapkido 지도자들이 Hapkido와 대동류합기유술의 관계, 최용술의 일본內 행적을 심도 있게 다루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가 合氣道를 이름으로 쓰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 나의 입장이지만, 이것과 별개로 Hapkido가 나름의 무도사를 정리하는 일 자체를 폄훼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역시 대동류합기유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Hapkido 무도사를 읽다 보면 근저에 있는 어떤 의도가 느껴진다. 그 의도라는 것을 Hapkido인의 시점에서 풀어 보았다.

 

‘비록 최용술 본인은 자기 무도는 合氣道가 아니라고 했다 하더라도 제자들이 그렇게 이름을 붙여버린 이상 최용술은 반드시 다케다 소오가쿠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운 사람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Hapkido라고 부르는 무도의 창시자 혹은 최초 전수자 최용술이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운 것이 맞아야 合氣가 들어간 이름을 쓰는 것이 궁색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용술은 본인이 다케다 소오가쿠 밑에서 (훗날 合氣道를 창시하는)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가르쳤다고도 했으니, 뒤늦게 일본 무도 合氣道에서 이름을 가져다 쓴 행위의 윤리적 책임도 어느 정도는 희석되지 않을까.

최용술이 다케다 소오가쿠의 제자였으며, 合氣道 창시자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최용술 본인의 회고만 있을 뿐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지만, 딱히 부정할 만한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최용술의 일본 행적을 일본 사람들이 은폐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용술의 말을 믿자.’

 

물론 이것은 나의 추론일 뿐, 모든 Hapkido 지도자의 인식이 꼭 이렇다고 할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Hapkido 자료를 읽으면서 발견한 논리의 큰 맥락이기 때문에 앞으로 Hapkido 자료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꽤 유용한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