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kido 지도자님, 헷갈리지 않으세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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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짓 원인의 오류

 

‘거짓 원인의 오류’란 Y가 X의 원인이 아닌데 X의 원인이라고 잘못 추론하는 오류를 말한다.

인과추리를 통해서 어떤 문제에 대한 올바른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려고 하는 경우, 올바른 추론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원인과 결과를 인과관계로 연결시켜 추론하거나 추리하기도 한다. 바로 이때 오류가 발생한다.

* 이상 『논리 속의 오류 오류 속의 논리』(정재환·신소혜, 한국회국어대학교 출판부, 2012) 中 ‘2. 거짓 원인의 오류’에서 인용

 

『대학합기도 교본』(오세용·임승혁·박정환·이영석, 한국학술정보(주), 2006) 본문의 시작 부분이다.

Ⅱ. 합기도의 기원

합기도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 같은 이름의 다른 무도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최초의 전수자가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초의 전수자는 다케다 소오가쿠(武田惣角)를 말한다. 예문 다음에는 한 문장 건너 뛰어 “다케다 쇼오가쿠*는 한국에서 합기도를 만든 최용술옹의 스승이기도 하며 일본 합기도를 만든 우에시바 모리헤이옹의 스승이다.”라는 설명이 있다.

* 주 : 책은 武田惣角을 주로 ‘다케다 소오가쿠’라고 썼는데 일부 문장에서는 ‘다케다 쇼오가쿠’, ‘다케다’, ‘무전총각’이라고 쓰기도 했다.

 

예문은 “합기도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 같은 이름의 다른 무도가 동시에 존재한다.”를 X, “이는 최초의 전수자가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를 Y로 나눌 수 있다. “다케다 소오가쿠가 한국인(최용술)과 일본인(우에시바 모리헤이) 제자에게 합기도의 모체가 되는 무도를 전수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합기도라는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무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과연 ‘최초 전수자가 동일한 사람인 것’이 한국과 일본에 합기도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무도가 존재하는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원인 진단이 틀렸다고 본다.

 

다케다 소오가쿠의 무도는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이었다. 그리고 合氣道는 다케다 소오가쿠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배웠던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가 창시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1915년 2월 북해도에서 다케다 소오가쿠를 처음 만나 대동류합기유술을 지도 받기 시작했다(1916년에는 비전목록<秘傳目錄>을 받았으며, 다케다 소오가쿠의 순회 지도에 동행하기도 했다.). 그는 1919년 12월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자 고향(와카야마현 타나베)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귀향하던 중 아야베에서 본인이 심취해 있던 오모토교(종교명)의 거물 데구치 오니사부로를 만났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며 그곳에 머물다가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는 아야베에 우에시바숙(植芝塾)을 열고 대동류합기유술을 지도했다. 1922년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다케다 소오가쿠를 아야베에 초대해 4월부터 9월까지 함께 대동류합기유술을 지도했으며, 같은 해 9월 대동류합기유술 교수대리(敎授代理)를 수여 받는다.

 

훗날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대동류합기유술을 포함해 본인이 수련했던 여러 무도와 무기술, 그리고 종교 철학을 융합해서 창시한 현대 무도가 合氣道이다*.

* 주 :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자신만의 무도를 만들어 나가던 1931년 지금의 신주쿠 자리에 전문도장 코부칸(皇武館)을 만들고, 1940년에는 재단법인 코부카이(皇武會, 現아이키카이<合氣會>의 전신)를 인가 받는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자신의 무도를 여러 이름으로 바꿔 불렀는데(그 중 가장 즐겨 사용했던 것은 합기무도<合氣武道>였다고 함), 1942년 코부카이가 정부 외곽단체 ‘대일본무덕회’의 전시 통제를 받게 되면서부터 편의상 合氣道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에시바 모리헤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정부의 무도 통제에 반발해 셋째 아들(첫째와 둘째 아들은 1920년 사망) 우에시바 기쇼마루(植芝吉祥丸)에게 코부칸(皇武館) 도장 운영을 위임하고는 은거 생활에 들어간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코부카이(皇武會)는 전쟁의 영향으로 명맥만 유지한 채 활동이 거의 없었다. 전쟁이 끝난 1948년, 우에시바 기쇼마루가 코부카이(皇武會)를 아이키카이(合氣會)로 바꾸면서 合氣道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고, 合氣道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한국과 일본에 合氣道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서로 다른 무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①일본에 合氣道가 있었는데 ②나중에 한국에서 전혀 다른 무도에 合氣道를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大東武』(엮은이 장군, 밝터, 2010)는 “최용술 선생의 제자들이 일본 책방에서 『合氣道』 책(1957년 우에시바 기쇼마루 저, 우에시바 모리헤이 감수)을 사서 가져왔다. 선생이 책에서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보더니 본인이 우에시바 모리헤이를 가르쳤다고 했다*. 제자들은 合氣道라는 이름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스승이 가르친 사람의 무도가 合氣道이니, 스승의 무도도 合氣道일 것이라고 추리했다. 아무도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合氣道를 창시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1950년대 말부터 최용술 선생의 제자들이 도장을 열기 시작했는데 合氣道로 간판을 붙였다.”고 기술한다.

* 주 : ‘최용술이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대동류합기유술을 지도했다’는 것은 최용술 선생의 진술만 있을 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한편, 지한재 선생은 2002년 무술전문잡지 『마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리나라에서 合氣道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다고 했다. 그는 “합기도는 내가 명명했다. 1962년도에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가 나고 나서 일본에서 들어온 책을 보니 『합기도』라는 이름의 책이 있어서, 비로소 일본에도 합기도라는 동일한 명칭의 무술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용은 다르지만 이름만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때 합기도에서 ‘합’자를 빼고 그냥 ‘기도(氣道)’라고 부르기로 했다. 氣道로 사단법인체를 만들었는데 후배 김정윤이 이사장을 하고 나는 서울지부장으로 만든 것에 반발해 결별하고 그냥 합기도라고 썼다.”고 했다.

 

첫머리에 예문을 인용했던 『대학합기도 교본』(오세용·임승혁·박정환·이영석, 한국학술정보(주), 2006)은 “지선생은 최용술옹으로부터 야와라(ヤワラ·柔)라 불리는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을 배웠고 발차기, 무기술(지팡이, 부채, 단봉, 장, 포박술) 등 자신의 기법을 더해서 현대의 합기도를 만든 것이다.”라고 썼다. 같은 책 14쪽에는 지한재 선생이 최초로 합기도라는 이름을 쓴 것이 1956년이라고 기록돼 있다.

 

정리하면 『大東武』는 한국 사람들이 1957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合氣道』를 보고 이름이 마음에 들어 1950년대 말부터 合氣道 간판으로 도장을 열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한재 선생은 스승(최용술)에게 배운 무도에 자신의 기법을 더해 1956년에 合氣道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1962년 이후 일본에 合氣道가 존재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Hapkido계의 원로들은 ‘일본에 合氣道가 있는 것’을 알았다. 전자는 알고도 合氣道를 가져다 썼고, 후자는 알면서도 나중에 이름 지은 合氣道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合氣道 명칭의 혼란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Hapkido계가 최소한 여기까지는 인정해야 ‘合氣道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서로 다른 무도가 존재’하는 이상한 상황을 해결할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담이다. 『대학합기도 교본』은 合氣道의 무명(武名) 문제-하나의 이름 아래 서로 다른 두 개의 무도가 존재하는 것-를 깊이 다루지 않는다. 合氣道를 단순히 한국의 Hapkido와 일본의 Aikido로 나누어 ‘Ⅲ. 한국에서의 합기도, Ⅳ. 일본에서의 합기도, Ⅴ. 한일합기도 비교, Ⅵ. 한일합기도 분석’의 순서로 기술했다.

 

오히려 출판 당시 Hapkido계가 직면한 문제점(정체성 혼란, 대중의 인식 부족, 분파 난립, 이론 체계 부실 등)을 ‘통일된 룰을 마련해 Hapkido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특색 있는 책이다(물론 나는 이 해결방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합기도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 같은 이름의 다른 무도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최초의 전수자가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두 문장에 담긴 오류가 너무 커서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다케다 소오가쿠-대동류합기유술-우에시바 모리헤이-合氣道’의 관계를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는 생각에 문제의 두 문장을 다루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