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문제

지도자는 먼저 본(本)을 보이는 사람이다.
지난 한 해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17년 새해에도 부탁드립니다.

 

 

2016년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해였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진 만큼이나 합기도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생활국민체육회가 통합되는 과정에 체육계의 발전을 기대했으나, 합기도의 종주국을 바꿔버릴 정도의 비전문적인 공무원들을 접하면서,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왜 국정농단 세력에 의해서 놀아날 수 밖에 없었나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대한합기도회는 지난 일년 동안 『합기도신문』을 통해서 올바른 합기도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합기도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광범위하게 퍼진 사이비 단체들로 인해 합기도를 올바로 알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노력으로 인해 이제는 진짜합기도와 사이비합기도가 일반인들에게 어느 정도 구분이 되고 있습니다.

 

합기도는 철학과 기술 체계가 매우 뛰어난 운동이지만, 명칭만 도용할 뿐 내실이 없는 사이비 단체들에 의해서 독창성을 잃어가고 시합이라는 시류만 따라가다가 그 정체성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결과 사이비 합기도에서는 더 이상 기술의 발전도 사유의 깊이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정통 합기도는 고류 무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형성된 현대 무도입니다. 고류 검술과 유술은 합기도 기술의 기본입니다. 뼈대를 부드러운 살이 감싸고 있듯 합기도는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속에 강함을 감추고 있는 힘있는 운동입니다. 합기도가 검술과 유술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이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일본의 검술 가문은 문하에 제자를 두는 과정이 엄격합니다. 대동류 유술 부흥의 조(祖)인 다케다 소가쿠 선생이 검술의 달인이었기에, 당신의 기술과 철학을 전달하는데 상당히 까다로왔습니다. 한국에서는 검술과 유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결국 비교적 가르치기 쉬운 발차기를 도입함으로써 유술과 검술의 움직임을 담는 원래의 수련형태에서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변증법적 발전이 아니라 단순한 퇴행입니다. 도복을 입지도 않으면서 원로라 자칭하는 선배들을 수 없이 겪으면서 알았습니다.

 

검술의 극의(極意)는 깨달음이라 생각합니다. 합기도 역시 그 깨달음을 추구해야 합니다. 합기도는 경쟁적인 시합을 하지 않아도 무술이 추구하는 특징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불가피하게 칼을 겨눌 수 밖에 없었던 무사들의 처절함을 떠올리면, 실제 전투에서 직면하는 긴장과 공포, 잔심을 이해하는 노력으로 합기도에 접근해야 합니다.

 

체육관장 아들로 태어나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어린 시절을 모두 보내야했던 나는 정통한 합기도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궁극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 평화는 소극적인 나약함이 아니라 적극적인 강함이었습니다.

 

필자의 도장 회원들이 타격기 위주의 도장 구성원들과 다른점은 회원 모두가 평화를 추구하는 합기도의 정신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통 합기도는 평생무도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무도를 저변확대시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이비 합기도의 광범위한 분열과 기술의 별질을 보아왔던 필자로서는 좀 어렵더라도 승단에 대한 기본 원칙을 지키고, 도통을 이어가는 합기도만의 가치를 지키면서 만유애호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여왔습니다.

 

사익을 목적으로 급조한 단체가 단기간에 수많은 지부 숫자를 늘릴 수 있는 것은 스승이 부재한 지도자들이 이해타산에 따라 옮겨가는 원인도 있지만, 타무술 유단자에게까지 짧게는 2~3일, 길게는 두어달 교육으로 사범자격증을 주고 있는 것도 원인입니다. 단기간에 지부 숫자를 늘리는 방법이고 돈도 벌수 있는 일석이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체들이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그런 결과가 지도자의 자질을 떨어뜨리고 합기도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합기도는 처음부터 비상식이 마치 상식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합기도가 대한체육회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정부가 주는 혜택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인정하는 자격증과 단증 그리고 지원금을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필자에게도 그러한 유혹이 없진 않습니다. 얼마전까지 대한체육회 가맹을 위해 거절하기 아쉬운 제안들이 타단체장들로부터 있었습니다. 잘하면 정부기관에서 인정하는 조직이 되고 수많은 지부숫자를 가진 거대 조직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충고까지 들어야 했지만 필자는 그렇게까지 해서 조직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가르치지도 않은 사람들을 합기도 지도자로 인정해주고 승단을 허가하는 것은 옳치 않습니다. 그러나 타 단체장들의 요구는 너무나 노골적입니다. 단증으로 얻는 수익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들은 수입이 있어야 사무실이 운영된다고 말하며 좀 더 빨리 승단을 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한 패거리가 되면 분명 돈은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지부숫자를 늘리고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오래 걸리고 힘들더라도 도장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깨끗하고 좋은 인연을 맺고 정확한 계보를 만들어 갈 것인지 결정해야합니다. 모두가 지키고 싶은 가치를 버려가면서까지 이해타산이 엮인 사람들과 타협하여 정략적으로 대한체육회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합기도의 미래를 위해서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합기도는 거짓없이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 이제 바로 잡혀야 합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 한해에도 합기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2017년 새로운 해에도 가족같은 합기도인들과 변함없는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대한합기도회
회장 윤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