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증에도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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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르치고 있는 최규형 회원이 최근 3단 승단을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정통한 합기도에서는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계보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도주(道主)가 있고 합기도 창시자의 정신과 기술을 이어가는 변하지 않는 도통(道統)이 있다. 합기도 단증은 그 도통을 이어가는 도주로부터 받는 것이다.

최 군은 2단까지는 일본 유학생 시절 도쿄에 있는 합기도장에서 6년 동안 수련을 하면서 받았다. 이후 귀국 후 필자의 문하에서 수련을 이어갔다. 대체로 다른 선생에게서 승단을 했던 사람은 내가 처음부터 가르친 회원이 아니기에 승단을 시켜준 기존 선생을 떠나 잠시 타 지도 선생에게 경험을 쌓는 정도의 관계만 가질 뿐이다.

몇년이 지나고 나서 3단 승단심사에 응시하고 싶다고 했을때 나는 기존에 2단까지 허가한 선생에게 그래도 좋은지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 내가 승단을 허가해 주면 내가 가르친 제자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최규형은 이전에 가르치던 선생이 있는데, 무시하듯 내가 승단을 시키는 것은 최규형 자신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나 또한 남의 제자를 내가 취하듯 지도자의 계보를 바꿔버리는 것은 잘못이 될 수 있다.

최규형 2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 선생으로부터 추천서를 가져왔다. 승단을 허락한다는 취지와 그동안 자신의 학생을 잘 가르쳐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편지였다. 지난 11월  심사에서 3단에 합격했고, 일본에 있는 세계본부에 승단접수를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메일이 왔다. 최규형에 대한 3단 신청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초단과 2단을 일본에 있는 선생에게 받았는데 무슨 이유로 윤선생이 3단을 허가 하느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수련을 다시 시작했다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하였다. 만약 타 도장에서 키워놓은 제자를 내가 빼돌리는 듯 한 것이라면 나는 세계본부로 부터 무도인으로서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돈벌이로 생각해서 단증을 주는 것이라면 나는 분명 무도(武道)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보게될 것이다. 사무국장이 이전에 받아놓은 최 군의 추천서와 내 도장에 입회한 날자를 통지해주었다.

세계본부 사무국에서 바로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 일본에 한 지도원으로부터 “함부로 승단을 시키면 위험해 진다.” 대충 심사해서 승단을 시키면 안된다는 말로 들렸다. 그 말을 듣고 심사 때마다 철저하게 심사를 해왔다. 그 결과 심사가 끝나면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본에 도장에서 수련하고 있던 한국인 회원이 돌아가려하자 그에게, 한국은 승단이 매우 어려우니 여기서 승단을 하고 가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철저히 점검해 왔다. 그렇게 거의 10년 이상 지났을 무렵 일본에서 심사시간을 짧게 줄여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엉터리로 심사를 본다는 말은 무도인에게는 정말 수치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얘기다.

아직도 심사를 돈벌이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초단을 받고 도장(협회)을 몇번 옮기면 고단자가 되는 창피스러운 합기도인들이 많다. 도복도 입지 않는 사람이 고단자라고 이야기 하는 자들도 있다. 누가 스승인지 언제 시작했고 단위(段位)를 누구에게 허가 받고 어느 선생에게 사사했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무도의 이름을 내걸고 무도계를 어지럽혀 왔다.

몇년 전 유현상 지도원을 세계본부에 5단으로 추천 했을때 그의 수련경력과 실력, 지도자로서 자질 그리고 몇명의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지 3개의 지부도장과 클럽 개설에 영향을 미친 과정에 관해서 거의 A4용지 몇장 분량의 추천서를 제출한 바가 있다. 세계본부에서도 5단 이상의 전세계 고단자에 대해서 철저히 신상을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합기도의 승단은 협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선생에게서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수련생의 단위를 심사하고 관리하며, 합기도 도주의 단증을 줄 수 있는 허가를 받은 한국인 사범은 필자 밖에 없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단위를 제자에게 부여하고 있는가?

스승과 제자의 신뢰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협회를 만들고, 단증을 발행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승단을 주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관장이 자기 스스로 자신의 승단을 협회에 신청만 하면 단증을 받는 어이없는 행위가 당연시 되는 한국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권위는 종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자기수양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