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비우기

단이 높아지고 수련 일수가 늘어가며 섬세하고 부드러운 기술 표현에 대한 고민도 많지만

과연 나는 상대에게 어떤 기운을 주는 파트너일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수련 중 파트너를 바꿀 때면 가끔,

“아~ 저 시연언니랑 안할래요. 힘들어요.” 라던가,

‘부탁합니다.’ 라고 했을 때 나의 시선을 피하며 동공지진을 일으키던 상대의 눈빛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내가 상대에게 썩 좋은 파트너는 아닌가보다 라고 느끼는 요즘이다. ㅠㅠ

 

아마도 2012년 이가라시 선생 세미나였을 것이다.

선생께서는 일교부터 사교까지 (중간에 끊지 않고) 쭉 이어 펼치는 기술을 보여주셨고

나는 상무도장의 류성훈 선배와 파트너가 되어 수련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숨이 차 헥헥 대면서도 기술을 걸고 기술을 받는 서로의 얼굴은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당시 흰 띠였던 내 기술이 제대로 걸릴 리 없었겠지만

마치 제대로 걸린 듯 착각이 들만큼 기술을 성심껏 받아주었고,

내가 당황하지 않을 만큼 속도와 힘을 조절하여 기술을 걸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마 나도 신이 나 지친 줄도 모르고 웃으며 수련을 했으리라.

그때를 떠올리면 5년이 지난 지금도 내 입가에 기분좋은 웃음이 걸린다.

그만큼 류성훈 선배는 상대에게 좋은 느낌, 즐거움을 주는 파트너였다.

 

신체적으로 다치지 않게만 하는 것이 아이키도에서 추구하는 상대에 대한 배려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상대의 마음까지 살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배려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상대의 마음까지 살피는 파트너인가.

이 부분에 대해선 처음에 잠깐 언급했듯이 아직은 아닌 듯하다.

 

예전에 누군가가 “아이키도를 왜 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스트레스 풀려고요.”라 대답했던 적이 있다.

아마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운동과 달리 파트너가 있어야지만 수련이 가능한 아이키도의 경우에는

이런 연유로 도장을 찾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최근들어 이런 생각을 해본다.

파트너와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아이키도는

수련 중 나의 기분, 나의 감정이 파트너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하루 중 쌓였던 부정적인 감정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수련에 임하게 될 경우,

그런 마음이 거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 단지 나의 기분으로 말미암아 상대에게까지 좋지 않은 기운이 전달되고

자칫하다간 부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 감정이 다 소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이에게 그 감정을 분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예전에 윤대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 마음에 와 닿았던 구절이 있다.

 

“오늘은 기분이 많이 좋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그 기분을 알 수 없게 하는 기술.

가장 좋은 기술은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들은 후 의식적으로 도장에 들어서며

그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잊어버리려 노력해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심적 동요가 있는 경우에는

수련을 하루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곤 한다.

나의 부정적 기운이 상대에게 전달되어 상대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는 것을 막고,

수련에 집중하지 못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하든 즐거우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반대로 기분이 나쁘거나 분위기가 경직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쳐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마련이다.

 

도장에 들어서기 전, ‘마음 비우기’를 한번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이제 무도인으로서 갖춰야할 진중함 이외에 ‘즐거움’이라는 숙제가 생겼다.

 

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아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누구라도 같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좋은 기운을 주는 파트너가 될 수 있으리라.

 

%ec%a6%90%ea%b1%b0%ec%9a%b4%ec%95%84%ec%9d%b4%ed%82%a4%eb%8f%84

< 2016년 8월 제주캠프에서, 한 없이 즐거운 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