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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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pkido계는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나(2) – 중요한 사실 누락

 

Hapkido계에서 말하는 Hapkido의 역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덕암 최용술 선생이 해방 후 대구에서 사람들에게 무술을 가르친 것을 Hapkido의 시초로 본다. 최용술 선생은 본인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로부터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을 배웠다고 했다.

 

  •  이름이 처음부터 Hapkido는 아니었다. 최용술 선생은 본인이 가르치는 무술을 야와라(柔)라고 불렀다.

 

  •  훗날 Hapkido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합기유권술(合氣柔拳術)’, ‘유은술(柔殷術)’, ‘합기술(合氣術)’, ‘기도(氣道)’라는 이름을 썼다.

 

  •  Hapkido는 (合氣道라는 같은 한자어를 쓰는) 일본의 Aikido와 다른 무술이다.

 

  • 지도자들의 연구와 노력으로 Hapkido만의 특색 있는 기술 체계를 갖추었다.

 

  • 국내 수련 인구가 많으며(대중화), 해외에서도 Hapkido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다(국제화).

 

모두 ‘사실’이다. Hapkido계에서는 ‘역사가 증명되고’, ‘Aikido와 한자 이름(合氣道)은 같지만 영문명칭·발음(Hapkido), 기술 체계가 다르고’, ‘국내외에 Hapkido라는 이름으로 정착했다’는 이유를 들어 “Hapkido를 合氣道로 인정해야 한다. Hapkido가 合氣道라는 이름을 쓰는 것에 시비 걸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왜냐하면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날부터 주민등록증에 ‘홍길동’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넣어 ‘홍길동’ 행세를 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홍길동’의 이름으로 살면서 있었던 일을 매일 일기에 적었다고 하자. 이것이 쌓이니까 ‘홍길동 행세를 했던 역사’가 되었다. 그러기를 여러 해, 진짜 ‘홍길동’이 나타났다. 진짜 ‘홍길동’이 그간의 상황을 살펴보니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나(가짜)에게 “당신은 ‘홍길동’이 아니다. 이제 ‘홍길동’ 행세를 그만 두고 원래 이름을 찾아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이 경우 내가 ‘홍길동’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이 확실하고, 나를 ‘홍길동’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내가 홍길동, 나도 홍길동’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다. ‘홍길동’ 이름으로 훌륭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내가 ‘가짜’라는 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홍길동’ 행세를 할 때나 진짜 ‘홍길동’이 나타났을 때 제일 감추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홍길동’이 아닌데 ‘홍길동’ 이름을 가져다 쓴 잘못이다. ‘가짜’에게는 이곳이 제일 아프다.

 

예를 든 것처럼 Hapkido계에서는 지금까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감춘 채 자신들의 역사를 말해 왔다. 바로 일본에 존재하던 ‘合氣道’라는 이름을 선배들이 도용했다는 사실…

다음 내용은 최용술 선생의 핵심 제자 중 한 분이었던 김정윤 선생의 회고록 『大東武(엮은이 장군, 밝터, 2010)』에서 발췌, 요약한 것이다.

 

  • 일본 책방을 드나들던 최용술 선생의 회원들이 1957년 일본에서 출간한 『合氣道(우에시바 키쇼마루 著)』라는 책을 선생 앞에 내놓았다. → 최용술 선생이 『合氣道』 표지에 인쇄된 ‘우에시바 모리헤이(合氣道의 개조開祖)’를 본인이 가르친 사람이었다고 하자 회원들은 ‘선생에게 배운 제자의 무술이 合氣道이면, 선생의 무술도 合氣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 1950년대 말부터 최용술 선생의 제자들이 하나 둘 도장을 열기 시작했는데 모두 간판을 合氣道로 붙였다. 그러나 정작 최용술 선생은 자신의 무술을 야와라(柔)로 불렀을 뿐, 공식 이름도 간판도 없이 도장을 운영했다.

 

  • 최용술 선생이 지도하던 도장에 이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 1951년 한국전쟁 중 ‘대한합기유권술도장(大韓合氣柔拳術道場, 대구 달성공원 근처 양조장 2층)’ : 1954년 도장을 계산동으로 옮기고 다시 봉산동으로 옮길 때는 간판이 없었음  → 1958년 ‘대한유은술도장(대구 봉산동)’ : 1년도 채 쓰지 않았음

– 1959년 독립 도장(대구 북성로 2가) 개설시 간판 없었음 → (수련 회원이 많아지자 회원들이 간판의 필요성 제기) 1962년 ‘대한합기술무도총본부’ : 1년쯤 사용

– 1963년 ‘대한기도회 수덕관(大韓氣道會 修德館, 대구 북성로 2가)’ : 1966년 최용술 선생이 기도회와 인연을 끊으면서 ‘대한기도회 수덕관’이라는 이름도 없어짐

그러나, 이런 간판을 걸었던 것이 최용술 선생의 뜻은 결코 아니었다.

 

  • 1970년 이후 국내외 Hapkido 관장들이 최용술 선생을 도주(道主)로 칭하고, 선생의 무술을 ‘合氣道’로 부르면서 선생에게 ‘合氣道 道主’라고 적힌 명함을 주었다. 그리고, 선생의 집 대문에 ‘대한합기도총본부’라는 간판을 붙여 주었다. 이 모든 일이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었다.

 

* 필자 주 : 『大東武』에는 도장 명칭 중 ‘대한합기유권술도장(大韓合氣柔拳術道場)’과 ‘대한기도회 수덕관(大韓氣道會 修德館)’에만 한자어를 표기해서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각 도장의 위치는 『大東武』의 내용을 참고해서 적었다.

 

덧붙여, 최용술 선생이 일본에서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로부터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을 배웠다는 것은 검증이 필요하다. 선생의 진술과 일본의 기록이 상당 부분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윤 선생은 『大東武』에서 “다케다 소가쿠는 대동류합기유술의 종가(宗家) 자리를 최용술(일본명 : 요시다 아사오) 선생에게 물려주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선생의 일본 내 행적을 은폐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용술 선생의 대동류합기유술(大東流合氣柔術) 계승 여부’는 주제의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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