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합기도 단체의 무리수 – “이 삼랑(三郞)이 그 삼랑(三郞) 아니라고?”(4)

Hapkido 측에서 인용한 자료가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환단고기』를 소개하는 것이다.

혹시나 『환단고기』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는 분은

두 번째 그림이 나오는 지점부터 읽으셔도 괜찮다.

 

 

우선 『환단고기』가 어떤 책인지 최대한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 독립운동가이면서 교육자*였던 운초 계연수(?~1920)가 펴냈다고 전해지는 책이다.

* 계연수는 단학회(檀學會)가 만주에 세운 교육기관 ‘배달의숙(倍達義塾)’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 『삼성기(三聖紀) 上‧下』,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扶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로 구성돼 있다.

 

– 환국→배달국→조선(=고조선)→북부여→4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남북국(後신라, 대진<발해>)→고려 시대를 기록하고 있다(흔히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라고 말하는데, 『환단고기』의 내용을 모두 인정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약 1만 2천년으로 연장된다).

 

– 주류 사학계에서는 위서(僞書)로 취급하고, 재야 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진짜 역사가 기록된 책이니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 주류 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위서로 취급하는 이유는 『환단고기』에 기록된 내용이 사학계의 통념, 통설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부연 설명>

① 국사 교과서가 우리나라의 역사로 인정하는 한계선인 고조선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② 고조선 시대 이후의 내용도 기록자의 시각이 기존 역사서와는 다르다(시각에 따라 자주적 사관과 국수주의적 사관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나뉜다).

 

– 초판본은 물론이고, 저본(底本)이 된 역사서 모두 남아있지 않다. 지금 출판되는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발행한 초판본의 필사본의 개정본(오탈자 수정)의 영인본’이다. 복잡하다.

 

 

『환단고기』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한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기 바란다. 온라인에는 『환단고기』를 찬양하거나 혐오하는, 양쪽 입장의 글이 모두 넘쳐난다.

 

 

아무튼 『환단고기』에 삼랑(三郞)이 기록돼 있고, 사이비 합기도(Hapkido) 단체에서는 이것을 인용해 “Hapkido는 신라의 화랑 ‘신라삼랑원의광’이 일본에 전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무술이다. ‘신라삼랑원의광’의 삼랑은 고조선 시대의 관직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Hapkido는 고조선 시대부터 있었던 전통 무예이다.”라고 주장한다(앞의 글 참조).

 

그래서 이참에 『환단고기』를 직접 찾아보았더니 삼랑(三郞)이라는 기록이 모두 여섯 군데에 나온다*.

* 증산도 상생출판사에서 발행한 안경전 종도사의 역주본 해석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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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백일사』 中 「신시본기(神市本紀)」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중략) 삼신三神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하는 벼슬이다.

삼랑三郞은 본래 배달倍達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중략)

지금 강화도 혈구에 삼랑성三郞城이 있는데, 성은 삼랑三郞이 머물면서 호위하는 곳이요, 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다.

 

 

  1. 『단군세기』- 1世 단군 왕검 재위 시절

재위 51년 무오년에 왕검께서 운사雲師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곧 그것이다.

* 『태백일사』는 1520년(조선 중종 시대)에, 그리고 『단군세기』-는 1363년(고려 공민왕 시대)에 나온 책이라고 한다. 『태백일사』와 『단군세기』의 삼랑성은 서로 같은 곳이다.

 

 

  1. 『단군세기』- 3世 단군 가륵 재위 시절

가륵 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해년이다. 5월에 임금께서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을 불러 신神과 왕王과 종宗과 전佺의 도를 하문하셨다.

(중략)

재위 2년 경자년, 이 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중략) 이에 가륵 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正音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

 

 

  1. 『단군세기』- 25世 단군 솔나 재위 시절

재위 47년 정유년에 임금께서 상소도上蘇塗에서 고례古禮를 강론하시다가 아첨하는 신하와 올곧은 신하의 차이를 물으셨다. 삼랑三郞 홍운성洪雲性이 나아가 아뢰었다.

 

 

  1. 『태백일사』 中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단군왕검 51년에 천왕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축조하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설치할 때 강남의 장정 8,000명을 동원하여(이하 생략)

* 2번과 같은 일을 기록했다.

 

 

  1. 『태백일사』 中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단군세기』를 보면 가륵 단군 2년에 삼랑 을보륵이 정음 38자를 지어 가림다加臨多라 하였다.

* 3번과 같은 일을 기록했다.

 

 

여기까지가 『환단고기』에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삼랑(三郞)에 대한 기록의 전부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사이비 합기도(Hapkido) 단체가 네이버 스포츠 백과에 올린 Hapkido 소개 화면을 한 번 더 가져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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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 “운기(運氣)와 지기(至氣)가 곧 합기(合氣)의 효시가 되었으며”라는 문구에 대한 반박은 새로 시작하는 연재에서 다룰까 한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 나오는 ‘단군 가륵’, ‘삼랑 을보륵’, ‘가림토’, ‘삼시랑’이란 단어의 출처와 의미를 확실히 알았다. 이것을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환단고기』에 ‘삼랑(三郞)은 배달국부터 고조선 시대까지 있었던 관직’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Hapkido의 역사가 길다는 직접 증거는 결코 아니다. 둘을 잘 구분해야 한다.

 

② 게다가 『환단고기』는 진위가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책이다. 따라서 Hapkido의 역사를 고조선 시대까지 앞당기기 위해 『환단고기』를 인용한 것은 아주 섣부르고 위험한 시도였다. 이것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지금껏 사이비 합기도(Hapkido) 단체가 내세워 온 ‘Hapkido 전통무예론’이 허구라는 것을 부각시켜 준다.

 

③ 백번 양보해서 『환단고기』의 기록이 모두 진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환단고기』의 삼랑(三郞)은 ‘신라삼랑원의광’의 삼랑(三郞)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렇게 보고 나니 네이버 스포츠백과나 Hapkido인들이 개인 블로그에 올렸던 글에 등장하는 ‘고조선의 삼랑’이 너무나 생뚱하지 않은가.

 

 

이 자리에서 Hapkido 지도자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환단고기』는 앞으로 새로운 역사적 증거가 발견돼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밝혀질 수도 있고, 아니면 현재 주류 학계의 의견처럼 허무맹랑한 위서(僞書)로 결론 내려질 수도 있다. 그 때까지 이 책을 사료로 삼는 일은 보류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환단고기』를 근거로 해서 Hapkido가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무예라고 했던 입장은 이제라도 철회하자. 그리고 지금까지 유포한 거짓 정보를 최대한 거둬들이기를 바란다. 나아갈 때만큼이나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진정한 무도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