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2016 이가라시 캠프 참가 후기

고바야시 캠프 & 국제합기도 대회가 막 끝난 이 시점에 뜬금없이 웬 이가라시 캠프 후기??

 

최근, 고바야시 캠프 & 국제합기도대회 참가팀의 사진과 동영상이 거의 실시간으로 SNS에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지난 6월 이가라시 캠프에 참석했던 때의 추억이 떠올라 뒤늦게 후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 한 아쉬움도 달랠 겸…

 

2013년 1월.

신혼여행 기간과 스가와라 선생의 마치다시 행사가 겹쳐 겸사겸사 일본으로 신혼 여행지를 정했고,

귀국 3일 전 마치다시에 들러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게 내 해외무도여행의 첫 시작이다.

비록 그 당시에는 검술 회원이 아니어서 수련 및 행사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내 덕분에 한국 팀의 수련 사진 및 행사 동영상이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혼자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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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 스가와라 선생 도장에서 신랑 송경창 지도원과 기념 촬영>

 

육아를 위해 2년 반 정도 수련을 쉰 후 복귀하면서 했던 다짐이

1년에 한 번씩은 ‘내 아이키도 역사에 한 획(까지는 좀 거창하긴 하다)을 그을 만한 이벤트를 벌이자’ 였다.

그게 승단이든, 해외무도여행이든…

때마침 그 첫 번째 기회를 이가라시 선생께서 만들어주셨다.

 

윤대현 선생님께서 2016년 행사 일정을 홈페이지에 올리셨을 때

고바야시 캠프냐, 이가라시 캠프냐..이 둘 사이에서 아주 잠깐 고민을 하였지만

이가라시 선생께서 올해를 끝으로 대외 활동을 접으신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가라시 캠프 쪽으로 내 마음이 살짝 더 기울었다.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가라시 선생께서 이제 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뭔가 애틋한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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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외 활동을 접으시는 이가라시 선생과 함께>

 

 

아이키도로 인연을 맺은 스승.

그 선생의 마지막 공식 행사를 축하하고 그 자리를 빛내기 위해

전 세계 아이키도인들이 야마나카호로 모여든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내 마음은 벅차올랐다.

 

무도로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된다.

아이키도 창시자가 추구하던 바가 바로 내 눈 앞에서 실현되는 순간이 아닌가.

 

한마디로 난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이가라시 캠프 참가는 아이키도에 대한 내 편협했던 시야와 생각을 한껏 넓힌 계기가 되었다.

 

1.

기라성 같은 선생들을 한 곳에 모셔놓고 내가 원하는 클래스를 골라서 참석할 수 있었다.

3개의 수련관에서 3분의 선생이 동시에 수업을 진행하시다보니

어느 선생의 수업을 들어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아니 할 수 없었다.

(1타임 당 3개의 수련관에서 3분의 선생이 동시에 수업을 진행하신다. 총 4타임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한 타임의 수련이 끝나고 다음 타임을 준비하기 위해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 중간 휴게 지점에 모여 자신이 참가했던 선생의 기술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뭐 사실 거의 일방적인 감격의 외침이었지만,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채 자신이 받은 감동을 얘기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유쾌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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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와 선생(6), 키노시타 선생(6), 하야시 선생(7), 사쿠라이 선생(6), 아라이 선생(7), 이가라시 선생(7), 이가라시 선생 사모님, 시라카와 선생(7), 타키모토 선생(7)>

 

2.

그 기라성 같은 선생들이 학생의 자격으로 다른 선생의 수업에 참여하셨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선생을 존중하며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반 회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같이 땀 흘리고 즐기시며 수련하는 모습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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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손을 잡아 본 선배들이 극찬 해 마지않던 하야시 선생. 캠프에는 선생이 아닌 학생의 자격으로만 참가하셨다.>

 

3.

남성 선생들 사이에서 당당히 여성 고단자로서의 아우라를 뿜어내시던 키노시타 선생.

다소 왜소한 체격에 인자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처음 뵈었을 때는 “유함”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분이셨다.

키노시타 선생이 자신의 수업을 마치고 학생의 자격으로 다른 선생의 수업에 참여하셨을 때

선생의 손을 잡아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겉으로 보이는 “유함” 안에 “강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부드럽게 기술을 이끌어 가시지만 임팩트는 확실히 주셨다.

넋 놓고 부드러운 기술에 이끌려 긴장을 놓았다가는

어느 순간 허리가 뒤로 접히며 바닥에 쳐 박혀 있는 날 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키노시타 선생과는 ‘한손에 양손잡기 측면 입신던지기’를 같이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사범 자격을 가진 여성 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키노시타 선생의 이런 모습은 더욱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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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전용 클래스를 진행하신 키노시타 선생과 대한합기도회 여성회원들>

 

4.

높은 실력의 여성 유단자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몇 번 수련에 참여하고 보니 같은 하카마를 입고 있어도 어느 정도 단이 구분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단이 낮을수록 위축되어 있고 상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고단자일수록 표정에 여유가 있고 자세가 곧고 당당했다. 친화력도 높아 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들끓었다.

이런 당당함과 여유가 있는 유단자,

그리고 하카마 끈 아래로 보이는 검은 띠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진 유단자들을 위주로 파트너를 정해 부탁을 했다.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아이키도의 본 고장에 왔는데 대충하고나서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한 타임에 15명 내외, 대략 60명 정도 되는 파트너와 수련을 하게 되었는데

이 중 실력이 출중하여 기억에 남는 몇 명의 여성 유단자들이 있었다.

손목을 잡는 순간 그 단단함에 놀라고, 손가락에서 뻗어 나가는 힘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느껴졌던 한 유단자.

내 손목을 잡고 버티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또 한 명의 유단자.

별 생각 없이 기술을 받았다가 기술이 너무 깔끔하고 강하게 들어와 놀랬던 유단자도 있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키노시타 선생 등…

여성 회원의 경우 출산과 육아로 인해 수련의 공백이 생길 확률이 남성보다 높고

그 이유로 아예 수련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여성 고단자로서 본인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그녀들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을 때까지 같이 하는 게 지금까지의 내 미래였다면,

이가라시 캠프 참석을 계기로 그 미래에 또 하나의 그림을 더하게 되었다.

여성 지도자.

물론 그 길이 쉽지 않겠지만 한 발 한 발 내딛어보려 한다.

 

캠프에 참석하는 내내 일본의 아이키도 인프라가 부러웠다.

몇 십 년이 지나 현재의 유단자들이 사범의 자격을 갖추게 될 때쯤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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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 이가라시 캠프에 참석한 한국팀 단체샷. 뒤로 보이는 후지산이 좀 더 뚜렷이 나왔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어디론가 사라져 사진을 같이 찍지 못한 두 남성 회원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사진>

 

 

– 이건 여담이지만,

일본 신혼 여행에서 마치다시로 가기 전,

와카야마의 가와유 온천으로 가기 위해 타나베 시에 도착하였을 때

역사에 우에시바 모리헤이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이 온천 가보고 싶다’ 하여 정했던 곳이 아이키도 창시자의 고향이라니!!

거기에다가 우리가 묶었던 숙소의 직원은 아이키도를 한다는 우리를

창시자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며 어떤 조그마한 신사에 직접 데려다주기도 하였다.

신사 주위에는 국제 아이키도 행사를 개최한다는 야외 행사장도 크게 위치하고 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이키도라는 운동이 그저 좋았을 뿐,

아이키도의 역사라던지 탄생 비화 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때라

그냥 흘려들었던 게 지금에 와서야 참 아쉽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